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데카르트는 틀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21] 여덟 가지 정신질환 통해 자아의 정체 탐구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한겨레21

페이지를 넘기려는 독자들을 붙잡고 싶다. 하지만 궁금하다. ‘누가’ ‘무엇을’ 넘기려는 것일까.

한 남성이 있다. 나이 48살. 이름 그레이엄. 두 번째 부인과 헤어진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물이 담긴 욕조에 전기히터를 넣고 감전사하려 했다. 그는 살아남았다. “내 뇌는 죽었습니다. 정신은 살아 있어요. 하지만 뇌는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저 ‘죽었다’고 얘기하지 않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진술했다. 그의 말대로면 데카르트의 명제는 뒤집어져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진단명은 코타르증후군. 병의 증상은 다양하다. 몸이 사라진 느낌, 부패한 느낌, 죄책감, 저주받았다는 느낌, 불멸불사할 것 같은 느낌, 그레이엄처럼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는 느낌. 벨기에 리에주 대학병원 로리스 의사의 연구팀이 그레이엄의 뇌를 검사했다. 전두두정엽신경망과 외측전두두정엽신경망의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약했다. 두 신경망은 각각 내부 자각과 외부 자각에 관련 있다. 그레이엄은 자기감(sense of self)과 외부 경험에 대한 자각이 극도로 약해 자기 존재와 경험 모두를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신경과학의 설명이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그레이엄은 ‘그레이엄’ 자신(또는 자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 또 다른 남성이 있다. 데이비드는 4살 때부터 멀쩡한 다리 한쪽을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어쩔 줄 몰랐다. 집 안에선 항상 반대쪽 다리로만 팔짝팔짝 뛰어다녔고 수차례 멀쩡한 다리의 절단을 시도했다. 그는 결국 2만달러를 내고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다. 그제야 그는 ‘온전한 나’를 찾았다.

그의 진단명은 신체통합정체성장애(BIID). 팔, 다리, 또는 둘 다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강렬한 절단 욕망을 느끼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 느낌은 이렇게 표현된다. “내 몸이 마치 오른쪽 허벅지 중간에서 멈춰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 밑으로는 내가 아니에요.” “내 영혼이 거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것(다리 한쪽을 절단한 자신)이 바로 나입니다. 이것이 내가 누구이고 무엇인지의 핵심이 되었어요.”

신체통합정체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우뇌 상두정소엽이 상대적으로 얇고 활성화가 약하다는 게 신경과학자들의 설명이다. 과학자들은 신체통합정체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몸, 환경, 몸의 움직임에 관한 감각을 통합하는 뇌의 연결망 대부분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된다고 말한다. 그 이상신호가 어떻게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자기감 결여와 절단 욕망으로 이어지는지 의문으로 남았다. 논의는 철학 영역으로 넘어간다. 철학자 토마스 메칭거는 ‘내게 속한다고 느끼는’ 신체 감각, 정서, 생각 등을 ‘현상적 자아 모형’이라 이름 짓는다. 그는 신체통합정체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그 모형에서 특정 신체 부위가 잘못 표상되거나 과소 표시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데이비드가 자른 한쪽 다리는 그의 몸인가 아닌가.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아닐 아난타스와미가 쓴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는 코타르증후군,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알츠하이머병, 조현병, 이인증, 자폐증, 유체이탈, 황홀경 간질 등 여덟 가지 정신질환을 다룬다. 당사자, 뇌과학자, 철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자아’의 정체를 탐구한다. 자기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그레이엄들’과 자기 일부에 자기감이 없는 ‘데이비드들’은 묻는다. 당신은 왜, 얼마큼, 당신인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