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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미 FTA 폐기? 농산물 등 추가 개방 압박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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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문상 폐기의사 통보시 180일 후 자동 종료… 통상전문가 "폐기시 한국보다 미국에 더 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끔찍한’(horrible)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능성을 놓고 추측만 무성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 현실화한 셈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 중”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통상전문가들은 폐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압박’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미 FTA 폐기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협정문 24조5항은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처럼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미 FTA 폐지를 추진할 경우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재협상 역시 당연히 가능하다. 협정문 24조2항은 양국이 서면으로 합의하면 협정을 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꾸준히 한·미 FTA에 대한 재협상, 극단적으로는 폐기까지 가능하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8월 유세 중에는 “한·미 FTA로 인해 우리의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며 “원래 긍정적 효과를 냈어야 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했다”고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단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선 과정부터 나왔던 얘기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한·미 FTA와 관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폐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한·미 FTA 발효로 미국 측의 이익도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발표한 ‘2017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미 정부는 “한·미 FTA가 미국 수출업체에 새로운 시장 접근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상품·서비스 교역 규모는 한·미 FTA가 발효된 2011년 1265억달러에서 2015년 1468억달러로 증가했다. 상품 분야에서는 한국이 무역수지 흑자를 보고 있으나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대(對)한국 서비스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흑자액은 발효 전인 2011년 69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06억5000만달러로 5년간 53.7% 증가했다. '알짜'로 분류되는 지식재산권 사용료와 여행서비스가 양대축이었다. 우리 기업들이 지재권 사용료로 미국 측에 지불한 액수만도 2015년 기준 60억달러에 이른다.

USTR도 보고서에서 “서비스 수출은 FTA 체결 이전보다 23.1% 증가한 205억달러에 도달했다”며 미국의 이익이 막대함을 명시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혹은 폐기 발언은 추가 시장 개방 등을 통해 미국 측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압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위협을 가해 긴장하게 만든 다음 테이블로 끌어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이라며 “한·미 FTA가 미국의 일자리 증가와 성장률 제고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대응한다면 농산물 같은 일부 시장만 수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협상을 통해 관세가 역행한다면 한국보다는 미국의 손해가 더 클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먼저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미 FTA 재협상·폐지를 실행할 권한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FTA와 같은 협상의 권한은 헌법상 의회가 가지고 있다. 행정부는 의회로 권한을 위임받아 협상에 나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전문가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인 정책에 힘을 실어줄지 여부는 미지수”라며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FTA 재협상·폐기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최악의 상황에는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협상 폐기나 재협상으로 이미 철폐된 관세를 부활시킨다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유영호 기자 yhryu@mt.co.kr, 이동우 기자 can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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