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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특파원 칼럼] <인민의 이름으로> 시청을 권한다 / 김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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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28일이면 중국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가 방영을 시작한 지 꼭 한 달이 된다. 실시간 방송으로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놓친 적이 없고, 중국 내 시청방식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동영상 사이트 시청도 재생 횟수가 단연 수위를 자랑한다. 언론 기사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무시로 등장하고,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일상 대화에 낄 수 없는, 가히 장안의 화제작이다.

<인민의 이름으로>는 반부패 조사당국이 고위직 연루 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연속극으로, 딱딱한 소재인데다 대형 제작사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큰 성공을 거뒀다. 배경으로는 오랜만의 본격 현대 정치 드라마라는 점이 꼽힌다. 부패와 공안당국을 소재로 1990년대에 성행했던 중국의 정치 드라마는 2004년 이후 만들어지지 않았다. 과열 제작 경쟁 탓에 선정성과 폭력성이 도를 넘었다며 당국이 황금시간대 방영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인민의 이름으로>는 거꾸로 당국이 주도한 드라마였다. 2014년 최고인민검찰원(검찰)이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미디어 관리 당국)의 동의를 미리 얻어 소설가 저우메이썬에게 각본 집필을 요청했고, 민간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2016년 2~6월 촬영이 진행됐다. ‘정치 드라마 금지령’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당국이 직접 개입했으니 사실상의 해금령이라는 시각도 있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해 ‘반부패’의 기치를 내건 뒤, 부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도 드라마의 성공에 힘을 보탰다. 곳곳에 실제 사건들이 깨알같이 녹아 있어 흥미를 더한다.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부패 관료는 남몰래 마련한 별장에 현금을 가득 쌓아놓았다. 또 다른 부패 관료는 체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미국으로 도주했으나 신분 노출을 우려해 허름한 여관에 숨어서 산다.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부패 연루자들의 홍콩 피신처 ‘스리시즌호텔’도, 수많은 중국 재벌들이 숨어든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숫자만 바꾼 이름이다.

그러나, 관이 주도한 작품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한국의 ‘국뽕’에 빗댄다면, 중국 공산당의 ‘당뽕’스러운 면이 있다. 이를테면, 성 지도부 회의에 초청된 퇴직 관료가 공산당원의 초심을 강조한다면서 항일전쟁 때 숨진 동료 이야기를 하며 엉엉 우는 식이다. 당국의 환영은 열렬하다. 일부 지방 당위원회는 산하 조직에 드라마 시청 뒤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저녁 7시 반 본방 사수’ 지시 공문을 낸 곳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어색할지언정, 이 드라마는 ‘중국 학습’의 관점에서 관심있게 볼 가치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사회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성 서기와 시 서기, 정법위 서기, 공안청장, 검찰장 등 우리에게 낯선 중국의 여러 직책들의 역할과 임무가 고스란히 묘사된다. 부패 문제에 대한 시각도 큰 가르침을 얻는다. 외부에서는 ‘반부패’를 막연히 권력투쟁의 수단 정도로 여기기도 하지만, 이를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보는 중국은 등장인물 대사처럼 “사회 혼란의 도화선”이 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인민의 이름으로>는 폭발적 인기 속에서 곧 종영하지만, 중국 검찰 선전당국(텔레비전·영상센터)이 주도해 만든 ‘반부패’ 드라마는 몇 편이 추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올가을 19차 당대회와 지도부 교체를 앞둔 중국에서, 반부패 드라이브를 주도해온 시진핑 주석에게 이런 드라마들이 큰 점수를 안겨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정치적 목적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스모그와 북한, 사드 이외의 중국을 알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참 좋은 텍스트가 등장했다. 감히 시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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