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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낯설지만 매혹적인, 이집트 거장들의 화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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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케말 유시프의 `귀족` (나무판에 유채, 47×38㎝, 샤르자 미술재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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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세월을 견뎌낸 황금빛 피라미드와 미라, 기묘한 상형문자, 드넓은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낙타의 행렬…. 현대인들의 인상 속에서 이집트는 여전히 고대의 왕국으로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덕수궁관에서 새로 선보이는 '예술이 자유가 될때 :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전시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사조를 이룩한 이집트 거장들의 작품을 담았다.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이집트는 '미라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 왜 하필 이집트였을까?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27일 오전 덕수궁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근대성(modernity)이 서구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수백 년간 예술과 사상의 중심지 노릇을 한 서유럽의 바깥에서도 근대성은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돼 왔습니다.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제3세계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죠."

기원전 7세기부터 지난 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 영국 등 외세의 지배를 받은 이집트는 압제에 저항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명을 흡수하며 고유의 찬란한 모더니즘을 꽃피운 대표적 장소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은 우리가 초현실주의 하면 곧장 떠올리는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 서유럽 작가들의 그림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믿음하에 비합리성과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큰 틀의 초현실주의라면, 이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실밀착형' 사회비판과 저항에 방점을 찍었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등이 자기 세계에 갇혀 주위의 사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나름의 사조를 꾸려낸 게 이집트 초현실주의 작가들"이라고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덧붙였다.

어둡고 기괴한 필치로 무릎에 못이 박혀 신음하는 여성의 누드를 그린 카밀 알텔미사니의 작품은 영국의 악랄한 식민지배하에서 이집트 서민들이 부르짖던 고통을 표현한다.

이집트 고유의 신화와 전설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도 특징. 전시의 메인 이미지로 쓰인 케말 유시프의 '귀족'은 피라미드 벽화의 전형적 구도와 전설 속 신들의 색깔을 신비롭게 녹여내며 '과연 무엇이 이집트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한다.

예술을 적극적인 사회 참여의 도구로 활용한 점에서 국내 1980년대의 민중미술과의 접점도 체감할 수 있어 흥미롭다.

전시는 서유럽 영향을 받아 이집트 초현실주의가 '예술과 자유그룹' 구성원들에 의해 태동하던 1930년대부터, 1940~1950년대 사진 장르와 만난 초현실주의, 또 이들의 영향을 받아 고유의 모더니즘을 구축한 1990년대까지의 이집트 미술을 아우른다. 전시 공간이 한국 근대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어서 이번 이집트 근대 거장 전시는 여러모로 낯설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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