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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문화와 삶] 홍준표라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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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지난 연말 촛불정국의 하이라이트는 12월29일이었다. 전인권과 신대철이 무대에 올라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 연주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박근혜 정부의 ‘창조’와 마찬가지로 오염된 태극기, 그리고 태극기를 든 일련의 친박세력들이 불렀던 이 노래가 원작자의 아들에 의해 본래 의미를 찾는 순간이었다. 이미 그 전에 촛불집회에 참석, ‘애국가’ 등을 불렀던 전인권은 다시 한번 촛불 광장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랬던 전인권이 곤욕을 치렀다.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선언하여 뭇매를 맞은 것이다. 실망했다, 배신자다, 공연티켓을 취소하겠다, 심지어 ‘적폐가수’다 등 화살 더미가 꽂혔다. 문재인 후보가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으로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문재인 캠프에서 문화예술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신대철 또한 “누구를 지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전인권에 대한 일각의 악의적 반응이 멈추는 것 같지는 않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렬 문재인 지지자,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문빠’라 지칭되는 이들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적폐’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왜 한국의 연예인들은 보다 정치적이지 않느냐고, 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느냐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선거 시즌에 배우와 음악가들이 일제히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걸 부러워하며 한국도 그런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기 힘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권 차원의 보복이 따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정부에 대항하여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해온 가수들은 작게는 방송 출연 금지부터 크게는 세무조사까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지난해 있었던 일 하나만 밝히겠다. 한 대기업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가수를 섭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행사의 성격에 딱 맞는 이를 골라 섭외했다. 그 가수는 망설였다. 이 행사가 대통령 직속 기관의 최종 재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최 기업 선에서는 통과됐기에 자신있게 밀어붙였다. 섭외가 완료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그 직속 기관에서 “다른 사람은 다 돼도 ○○○는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제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지원하지 않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하여 그 대상을 ‘배제’해 버리는 행위가 정권 차원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 배제가 단지 정치권에서만 행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은 스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그 욕망은 당연하게도 여러 층위를 갖는다. 인기가 많을수록 그 층위도 다양해진다. 그 층위의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스타는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연예인이 소신 발언을 할 때 반대층의 맹렬한 비난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최근 전인권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이분법적 잣대로 내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일 또한 종종 목격된다. 아이돌 그룹을 정치·사회적 행사에서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가 ‘다름’에 대한 충분한 존중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제 웬만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조차 선악의 구분이 단면적이지 않건만, 당위의 잣대로 피아를 구분하는 것이다. 상대를 몰아치고 배제하며, ‘그렇기 때문에 넌 주적이다’라고 규정하는 캐릭터의 전형을 우리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목격하고 있다. 홍준표다. 그를 보며 뒷목을 잡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그런 홍준표의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낄 터다. 홍준표를 보며 분노할 일만은 아니다. 그는 진영을 떠나 한국 사회의 어떤 무의식을 선연히 투영하는 거울에 불과하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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