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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동성애자도 성적 경향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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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공회 새 서울교구장 이경호 주교

“교리·헌금 강요 안해 성공회스럽다”



한겨레

성공회 새 서울교구장 이경호 베드로 주교.


서울시청 건너편 성공회 대성당은 근대 건축물의 백미다. 성공회는 이 대성당 앞마당에 있던 3층 건물을 허물고 300여평을 공원으로 만들어 서울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고, 서울시가 요즘 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20분엔 대성당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클래식 공연도 선보인다. 지난 25일 새 서울교구장으로 취임한 이경호(58·사진) 베드로 주교는 성공회 안에서 누구보다 열린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전·부산 3개 교구를 둔 성공회에서 서울교구는 전체 사제 232명 가운데 157명이 속해 비중이 크다. 이 주교는 정년은퇴하는 65살까지 앞으로 7년간 서울교구를 이끈다. 26일, 그는 대성당 뒤편의 주교관인 한옥 양이재에서 객을 맞았다. 서울 한복판에 고층건물을 올리지도 않고 소박하고 멋스런 한집을 간직한 게 ‘성공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교는 대성당의 주임사제로 있을 때 청년 신자들과 매우 가까웠다.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부활 같은 주제조차 청년들이 얼마든지 묻도록 허용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답했다. 숨통이 트인 청년들이 잘 따랐고, 그만큼 청년 신자들도 늘었다.

성공회는 민주화 기여 전통과 성공회대 등으로 인해 진보적 이미지가 강하다. 독신 사제를 고수하고 여성 사제를 거부하는 가톨릭과 달리 사제의 결혼을 허용하고, 여성 사제가 10%나 되는 것도 그런 이미지를 짙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의 전반적인 보수화는 성공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조화를 특히 강조한다. 다양성을 장려하기까지 한다. 약자 배려나 예언자적 사명에 대해선 강단이 있다.

보수 기독교 인사들이 배타를 서슴지 않는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 성공회에선 동성애자 주교까지 탄생했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그런데도 그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며 “성적인 경향 때문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경기도 안성 시골을 들개처럼 돌아다녔다는 그는 사제복이 너무 멋져 보여 초등 5학년 때부터 신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사제의 꿈과 신혼생활을 동시에 추구하며 신학생 시절엔 밤마다 카세트테이프와 옷 장사도 했다. 하지만 장사엔 영 소질이 없음을 자각하고, 외벌이로 처가살이를 하며, 아이를 전혀 학원에 보내지 않는 소박한 삶을 택했다.

그는 딸을 키우면서도 쥐어짜지 않았듯이 신자들에게도 교리나 헌금을 강요하지 않은 걸 ‘성공회스럽게’ 여긴다. 그는 “요즘 새로 오는 신자들은 여러 종교 교단의 문화 등을 상세히 비교해 기존 신자들보다 더 잘 알고 와 깜짝 놀라곤 한다”며 “전례는 성스러우면서도 쥐어짜지 않는 스타일이 이제는 호평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며 성공회스럽게 웃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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