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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읽기] 처음 겪는 일들과 오래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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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것 같다. 먼저 북한이다. 안보위기야 늘 상존해왔지만 '북한이 6~7주마다 핵폭탄 1개씩 만들 수 있다'는 정보는 처음 나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거대한 게임 체인저'로 거론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사들을 모두 불러 이를 '진짜 위협(real threat)'이자 '커다란 세계적 문제(big world problem)'로 규정했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의제가 된 것은 6·25전쟁 이후 처음인데 미국과 세계의 문제로 커진 게 좋은 건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처음이다.

중국은 또 어떤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말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미국이 북핵 시설을 선제공격하더라도 중국의 군사적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중국 관영매체의 사설도 나왔다. 이런 초유의 일을 맞이한 한국에 대통령은 탄핵으로 없고 대행만 있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중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는다고 자랑하던 외교부는 한국을 건너뛰는 '코리아 패싱'에 말이 없다(19세기 구한말을 연상시키는 일이니 처음은 아니라고 위안해야 할까?).

먼지 문제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초미세먼지 문제도 사실 '근대성(modernity)'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다. 초미세먼지의 근본 원인은 석탄화력발전, 디젤자동차, 굴뚝형 산업과 건설 현장에 있다. 이른바 산업화의 산물로 이 시대 인류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기후변화의 원인과 일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중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목숨을 잃을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손실도 회원국 중 가장 높은 0.63%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자랑해온 성장 방식이 앞으로는 오히려 성장을 훼손하게 되리라는 경고와 다름없다. 신흥 국가의 발전 모델로 손꼽히던 한국이 이제 구체제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로 낙인찍히고 있으니 이 또한 처음 겪는 일이다.

인구 변화는 더더욱 그렇다. '인구절벽'의 저자 해리 덴트는 필자와 함께 진행한 세계지식포럼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의 길로 빠져들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이 그만큼 부자 나라인가에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도 아닌 한국이 인구절벽, 소비절벽, 일자리절벽, 재정절벽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견뎌내겠느냐는 우려다. '장수기술(longevity technology)'의 발전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구글 비즈니스 X의 공동창업자 서배스천 스런은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술적 관점에서 인간수명을 120세까지 늘리는 일이 완성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라는 국제기구에서는 '노인'을 재정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60세까지 살면 드물게 오래 살았다며 환갑잔치를 하던 게 엊그제 일인데 이미 기대수명 80세를 넘어 100세 이후로까지 가는 '긴 현재(long-now)' 시대를 지금까지의 교육과 고용, 연금과 복지시스템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야말로 처음 겪는 일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가세한다. 천재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예고한 것처럼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으로 기계총지능이 인간총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이 눈앞에 와 있다(이미 넘어섰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인간의 일자리가 전례 없는 범위와 속도로 기계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에 대비해 '로봇세'와 '인간 기본 소득제'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unknown unknown)'는 말처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회와 도전조차 아직 파악되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과거 연장선에서 종래의 방식으로 우리가 처음 겪는 일들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불연속적 변화가 가속화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미래를 통찰하는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하다. 너무도 구태의연한 대선후보 TV토론을 지켜보며 낡은 주제, 오래된 리더십에 낙심하게 되는 것은 필자뿐일까. 우리들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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