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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개가 사람 가르치는 이야기, 밑바닥에서 위로받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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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뜻밖의 생' 펴낸 작가 김주영

연합뉴스

김주영 작가의 '뜻밖의 생'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주영 작가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열린 장편소설 '뜻밖의 생' 출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4.26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 나이 되도록 신작을 쓰는 처지에는 내 나름대로 꿈이 있습니다. 문학의 최종 목표는 작품을 읽는 사람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 추위에 떠는 사람, 더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을요. 이런 생각이 제 마음 속에 도사린 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 김주영(79)이 장편소설 '뜻밖의 생'(문학동네)을 펴냈다. 보부상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하층민의 삶을 복원한 대하소설 '객주'를 2013년 완간한 뒤 4년 만의 신작이다. 발붙일 곳 없이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한 노인이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박호구는 도박판 타짜인 아버지와 무당을 신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데다 선천적으로 성장이 더딘 병까지 앓는 박호구는 옆집 단심이네와 그나마 마음을 트고 산다. 그러나 단심이네가 사라진 남편을 찾아 떠나고 어머니와도 갈등이 깊어진 끝에 고향 마을을 떠나 노숙생활을 시작한다.

단심이네가 키우던 개 칠칠이는 박호구의 친구이자 보호자로 동고동락한다. 먹을거리를 훔쳐 갖다주는가 하면 따뜻한 온기로 잠에 들 수 있게 돕는다. "그뿐만 아니었다. 외로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 추위 때문에 흘리는 콧물을 혀로 핥아 닦아준 것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칠칠이였다." (96쪽)

박호구는 곡예단에 들어갔다가 단심이네를 다시 만난다. 사라진 칠칠이를 찾아 노숙하던 터미널로 돌아갔다가 강제로 징집돼 군대에 끌려가는 등 시련이 계속된다. '길 위의 작가'라는 별명처럼, 작중 인물 박호구는 끊임없이 떠돌며 뜻밖의 사건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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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신작 '뜻밖의 생'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주영 작가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열린 장편소설 '뜻밖의 생' 출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4.26 mjkang@yna.co.kr



소설이 칠칠이와 함께 성장해가는 박호구의 일대기라면 칠칠이는 또다른 주인공이다. 작가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사람을 비하할 적에 가장 손쉽게 지껄이는 말이 개새끼다. 그런 개가 사람을 가르치는 이야기"라고 했다.

"밑바닥에 있는 대상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위로를 받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돈 많은 사람은 돈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그 위치에서 위로받아요. 하지만 혼자서 세상의 풍파를 겪는 박호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옆집의 똥개예요."

작가는 러시아에선 촌부들도 외고 다닌다는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읊었다. 어릴 적부터 암송한 이 시가 위로를 주제로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안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문학의 최고 기능으로 위로를 꼽았다. 내년이면 팔순인 작가가 "흘러간 물을 끌어당겨서 물레방아를 돌리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작가는 "때리면 맞고 밀면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을 살면서도 절대로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고귀한 사람의 이야기다. 한 문장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장담합니다. 굉장히 재밌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 최고로 재밌습니다. 읽기 시작하면 밤새울 거예요." 312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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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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