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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현직 판사들 "블랙리스트 조사 불가능하다면 사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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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해왔다는 의혹에 판사들의 저항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블랙리스트 조사를 방해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의 행위가 불법임을 판사직을 걸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오모 판사는 지난 24일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를 거부한 고영한 처장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후회할 것 같다며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의 오 판사는 고 처장의 주장이 기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 판사는 지난달 31일 진상조사위원회 요청을 받고 지난 3일 기획조정실 컴퓨터 파일을 확인하는 적법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문제 컴퓨터를 사용한 판사가 동석한 상태에서 파일명을 확인해 사생활이나 기밀에 속하지 않은 것만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도 블랙리스트가 없으면 의혹은 해소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인복 진상조사위원장은 법원행정처에 컴퓨터를 조사하겠다는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7일 경향신문이 조사위가 블랙리스트에 관한 구체적 진술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 이위원장이 고 처장에게 요구했고, 고 처장은 곧바로 보안유지가 필요한 문서가 있다며 거부했다.

오 판사는 “고영한 처장은 근거없는 의혹을 잠재우고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조사위의 중요하고도 정당한 직무상의 행위를 저지하고 방해했으니 그 책임이 무겁다”며 “저의 법적 판단이 틀렸다며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마땅히 사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글에는 26일 현재 50명 넘는 판사들이 “사직을 한다면 법원의 오늘을 이렇게 만든 선배들이 내야지요. 오판사님이 사직하시면 저도 사직해야겠습니다”는 등의 지지댓글을 달았다.

경향신문

대법원 법원전시관에 법관의 독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 조항이 전시돼 있다. 김영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오 판사의 게시글 전문

존경하는 전국의 법관 여러분께, 그리고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진상조사위원회의 업무용 컴퓨터 등 조사협조 요청에 대하여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께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답변을 하였다고 조사보고서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제가 아는 사실과 저의 의견을 공개하지 아니하고 침묵한다면 후회할 일이 될 것 같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마치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하듯이 조사위원회가 확보조사한다는 그러한 통념적 방법을 염두에 두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판사님들께서는 그 부분을 오해하시면 안될 것 같아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17. 3. 31. 진상조사위원장의 검토요청을 받았고, 4. 3. 진상조사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최적화된 조사방법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기술적 상세는 생략하고, 요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사위원회는, 그 PC를 점유사용했던 주요조사대상자가 동석한 상태에서, HDD/SSD에 대한 현장선별을 합니다. 혹시 있었을지 모르는 삭제/완전삭제/포맷에 대비할 수 있도록, 포렌식 소프트웨어, 장비, 전문가를 동원하여 현장선별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검색결과목록에 나타나는 파일명을 확인하면서, 하나씩 동의여부를 묻고, 동의받은 것에 한하여 그 내용을 열람하는 방법입니다. 임의적 내용 열람이 아니므로 사생활침해/기밀유출의 우려는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열석한 조사대상자가 검색어, 검색방법에 대하여 즉시 이의제기 가능한 상태입니다. 검색결과를 열람하면서 특이 파일명을 발견하면, 열석한 조사대상자에게 그 내용열람에 대한 동의여부를 질문합니다. 동의를 받고 내용열람을 하거나, 동의가 없어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거나, 어느 경우든 모든 과정을 조사위원회는 녹화기록합니다. >

조사방법은 이러한 것이었음을 법원행정처장께서도 틀림 없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소상히 알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예견가능한 것이었으므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법원행정처장께서는, 법원행정처 문서 중 보안유지가 필요한 문서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특정 PC에 대한 동석하 현장선별(검색 및 파일명확인) 및 동의하 내용열람조차도 불가하다는 말씀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법원행정처장께서는 다음으로, 본인 동의가 없는 한 법원행정처장이 위 요청을 수락할 권한이 없다 하셨습니다. 사법행정에 한하여, 법원행정처 내부 문서관리체계에 포괄되는 문서에 대하여, 작성자 본인의 동의가 없는 경우에는, 대법원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진상조사위원회라 할지라도 그 목록(파일명)조차 볼 수 없다는 입장은, 제가 아는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아니하다고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고위공직자의 업무용 PC에 저장된 전자문서에 관하여 사생활이라는 법적 보호를 받는지 살펴봅니다. 물론, 업무상 문건과 사적 문건이 혼재하고, 대내비, 대외비, 초고 등이 혼재하는 경우입니다. 업무용 PC의 저장장치는 유체동산과 전자정보의 2가지 측면이 있으므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유체동산에 대하여, 주요조사대상자에게 당초부터 소유권이 없었고, 현재 더 이상 점유권이 없음이 명백합니다. 법원을 떠나신 분이거나 그 사무실을 떠난 분들입니다. 전자정보에 대한 사생활의 합리적 기대라는 문제를 보면, 포렌식 툴(CFT, EnCase 등)을 이용하여 현장선별을 할 수 있다면 법익충돌의 문제는 최소화될 것입니다. 현장선별을 하지 못하고 통째로 이미징하는 경우에는 법익충돌 및 이익형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이번 조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은 그러한 개인적 법익을 넘어선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고위법관이므로 사생활 보장의 필요성이 높다 할지 모르지만, 고위 공직자라는 지위만으로 일반인보다 특별한 사생활보호를 누리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법부 초유의 중대 의혹을 조사하는 사안이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려는 이번 조사를 위하여는 사생활의 요청이 한 걸음 물러서야 합니다. 법원이 지급한 업무용 PC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생성, 저장 또는 인쇄된 특정의 문서만을 찾아보려는 것이므로, 사생활은 열 걸음 물러나야 합니다. 더욱이, 감청 등(interception, surveillance, wiretap)의 실시간 조치가 아니고, 사후적 열람(search, disclosure)에 불과하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위와 같은 법리검토는, 우리나라 판례로서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도2680 판결, 대법원 2009. 12. 24. 2007도6243 판결, 서울동부지법 2007. 7. 5. 선고 2007노318 판결 등에 의하여,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로서 CITY OF ONTARIO, CALIFORNIA, et al., Petitioners, v. Jeff QUON et al. 130 S. Ct. 2619 (2010); O’Connor v. Ortega, 480 U.S. 709 (1987) 등에 의하여 충분히 뒷받침되는 것이기에 저는 이 또한 조사위원회에 보고하였습니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께서 거부하신 시점은, 주요조사대상자의 PC에 생성 또는 저장 또는 복사된 전자문서의 흔적, 그리고 인쇄된 문서의 인쇄 흔적(프린트 스풀링 영역)을 복구하여 조사할 필요성이 높은 때였습니다.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한 3월에도 물론 그러하였지만, 참담한 의혹이 제기된 직후로서 4월 7일이므로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조사위원회가 전자증거의 삭제, 변개, 훼손을 통제하고, 임의제출에 스스로 얽매이거나 안주하지 말고, 저장매체를 적극적으로 확보하여 철저히 조사하는 것, 적어도 그러한 노력을 최선의 수준으로 경주하는 것은,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에 필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조사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완수하여야만, 근거 없는 의혹을 잠재우고 재조사 논란을 일소하며 외부의 선동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법관 사회가 안정과 통합으로 나아가고 국민 앞에 사법부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께서 조사위원회의 이처럼 중요하고도 정당한 직무상의 행위를 저지하고 방해하셨으니, 이에 대하여 책임이 무겁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법관 여러분께서는 부디 깊고 넓게 살펴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이러한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반드시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이 오○○ 판사는 법적 판단을 말씀드렸습니다. 오판이라고 판명된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제가 마땅히 사직을 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2017. 4. 24.

판사 오○○ 올림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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