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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창조경제에 발목잡힌 4차산업혁명.. 文 "한국 9년간 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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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흐름 읽지 못하고 창조경제에 대해 글을 쓴 현실이 너무 부끄럽다"

CBS노컷뉴스 구성수 선임기자

“우리는 지난 9년 동안 허송세월했다. 세계가 인공지능과 전기차, 자율주행차,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손 놓고 있었다. 4차산업혁명의 준비에서 까마득히 뒤처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4차산업혁명에 대한 공약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다.

‘4차산업혁명’은 최근 경제,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대선후보들이 너나없이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동력으로 4차산업혁명을 주요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경제단체나 연구소 등의 세미나나 포럼 주제로 4차산업혁명이 단골메뉴처럼 들어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가히 4차산업혁명이 하나의 큰 유행처럼 거대한 물결이 되어 밀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전세계적으로 4차산업혁명의 물결이 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게 된 것은 2016년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삼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인 2010년, 11년부터 ‘Industry 4.0’, ‘Industrial Internet’이라는 이름 등으로 4차산업혁명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도 그로부터 2, 3년 후부터 정부 주도로 열심히 그 대열을 좇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가 지난 9년 동안 허송세월했고 경쟁에서 까마득히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선후보 공약으로서 부풀려진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일면 진실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독일의 경제, 산업계에 4차산업혁명의 붐이 거세게 일 때 우리는 ‘창조경제’에 매몰돼 그 변화 추세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동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 실현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취임하면서 내건 주요공약으로, 이후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돼 왔다.

미래창조과학부 홈페이지에서는 창조경제는 “국민개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IT(정보기술)를 접목하고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촉진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그 안에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과학기술, IT, 융합 등 4차산업혁명을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이 담겨있다.

그에 따라 창조경제 온라인 플랫폼인 창조경제타운과 지역창조경제의 거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워져 실제로 가동되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창조경제가 4차산업혁명을 직접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손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4차산업혁명 때 나오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만 4차산업혁명의 문제의식이나 4차산업혁명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교수는 “세계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는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을 고집했고 이것을 계속 끌고 가려고 했다. 한마디로 세계 흐름에 맞는 방향성이 부족했다. 구체적으로 대기업과 연결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는데 대기업은 4차산업혁명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없다. 이런 풍토 속에서는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키워낼 수 없다. 방향성이 잘못됐고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에 비추어볼 때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내세우는 연결성에도 한계가 있다.

김상윤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4차산업혁명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성과 창의성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중인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국내 산업군별 대표 대기업과 지역을 연계하여 기업-지역-산업을 매칭하는 형태로 추진하면서 연결성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수직적인 연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성과 창출과 프로젝트 추진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가치인 산업간 연결성과 창의적인 융복합 비즈니스 모델과 아이디어 유도 측면에서는 일부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과 독일 등이 4차산업혁명으로 경제, 산업계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일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창조경제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비판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조경제는 결과적으로 낭비적이었다. 창조경제의 실체는 없다. 이제는 모두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본다. 4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나 성과주의적인 정책이 안 맞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과 독일에서 4차산업혁명의 바람이 불면서 한창 혁신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는 뒤늦게 2013년부터 창조경제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정작 4차산업혁명의 문제의식이나 방향성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만이 아니라 학계, 전문가 사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지난 정부에서 창조경제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4차산업혁명을 연구하면서 보니까 너무 창피하다. 독일은 2011년에 ‘Industry 4.0’ 실험을 본격화했는데 우리는 2013년에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면서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 당시에 창조경제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 중에서 독일의 ‘Industry 4.0’을 얘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전문가 사회가 이 꼴이다. 너무 부끄럽다”며 한숨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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