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소울풀한 매력이 넘치는 무대를 만나다 - 뮤지컬 `드림 걸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78] 내한공연한 뮤지컬 무대의 인기몰이가 대단하다. 뮤지컬 '드림걸즈'다.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 비욘세의 모습으로 화제를 몰았던 바로 그 내용의 무대다.

뮤지컬 '드림걸즈'가 처음 막을 올린 것은 1981년 12월 20일 브로드웨이 임피리얼 극장에서였다. 특히 이 작품은 미리 알고 보면 더 감동적인 내용이 숨겨져 있다. 바로 196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모타운 소속의 디트로이트 태생인 인기 걸 밴드 '수프림스(Supremes)'의 이야기를 차용해 만들어낸 내용이다. 수프림스는 리드싱어였던 다이애나 로스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켰던 흑인 여성 트리오이다.

매일경제

오랜 세월 큰 인기를 누렸던 그녀들이지만 그렇다고 우여곡절이 없던 것은 아니다. 특히 로스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 팀의 리더를 맡았던 플로런스 밸러드의 사연은 무척이나 극적이다. 뮤지컬에서 매니저로부터 버림받고 팀을 떠나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다가 결국 재기하게 되는 팀 멤버인 에피 화이트는 바로 밸러드의 무대적 구현이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훗날 영화계로까지 진출하게 되는 멤버인 디나 존스가 바로 로스의 개인사를 투영시킨 존재라는 것이다. 차갑고 비열한 승부사이자 존스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매니저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 역시 흑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의 창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의 무대적 캐릭터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무대를 감상한다면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극적 생명력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게 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살리기 위한 변화도 더해졌다는 사실을 알면 감동은 더욱 남다르다. 무대에서는 매니저와 다른 멤버로부터 버림받았던 화이트가 재기에 성공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감동 어린 우정의 재회를 나누지만 실제 수프림스의 초창기 리더였던 밸러드는 사실 비극적인 개인사를 겪었다. 무대에서의 스토리와 달리 그녀는 가난과 우울증,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을 되찾지 못하다가 결국 197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32세에 불과했다. 어찌 보면 무대에서 눈물 어린 화해를 나누는 멤버들의 엔딩 신은 수프림스를 좋아했던 애호가나 팬들에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과 환상을 담은 염원의 구현일 수도 있다. 저간의 사정을 알고서 무대를 곱씹어보면 더욱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미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이해도 작품 감상에는 큰 도움을 준다. 뮤지컬에선 소속 가수들을 방송에 노출시키기 위해 프로듀서인 테일러 주니어가 라디오 DJ들을 만나 뇌물을 건네는 장면이 스치듯 등장한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엄청났던 1950~1960년대 미국 방송가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방송 노출의 대가로 금전을 지불하는 '페이욜라(Payola)'와 심지어 돈 대신 마약을 건넸던 '드러골라(Drugola)'는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매스 미디어의 폐해들이다. 물론 모타운 레코드의 어두운 역사와도 관련 깊은 실존했던 사건들이어서 묘한 뒷맛을 남긴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드림걸즈'는 장르를 넘나들며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흥미로운 사례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1981년작 무대용 뮤지컬은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2006년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 시장에서 큰 흥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 처음 만들어진 지 꼭 25년 만에 스크린으로의 변화가 시도된 셈이다. 메가폰을 잡은 빌 콘돈 감독은 2002년 뮤지컬 영화 '시카고'에서 대본작가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 영화화에 대한 시도를 꿈꿔봤던 것은 아니다. 여러 감독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수차례 영화 제작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번번이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만 해도 휘트니 휴스턴, 로린 힐, 켈리 프라이스, 모니카 등 그야말로 다양하고 다채롭다. 실제 영화에서는 디나 역으로 비욘세가, 에피 역으로는 제니퍼 허드슨이, 그리고 지미 역으로 에디 머피가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원래 무대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디나의 노래 '리슨(Listen)'은 영화의 인기에 날개를 달았고, 그해 오스카상 수상식에서 2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쾌거를 낳았다.

영화의 흥행 이후 뮤지컬 무대가 다시 꾸며지면서 작품도 또 다른 변화를 선보이게 된다. 아무래도 영상적 기법의 무대 활용이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무대를 아는 사람은 영화가 궁금해지고, 영화를 봤던 사람은 원래 무대가 그리워지는 '양수겸장'의 마케팅이었다.

새로운 라이선스 뮤지컬이 글로벌 마켓에서 첫선을 보였던 것은 우리말로 제작된 월드 프리미어 공연에서였다. 홍지민과 정선아, 오만석 등이 무대를 꾸민 한국어 캐스팅 공연으로 경제적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베타 버전의 무대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의 흑인들 감성이 담겨 있는 이번 투어 프로덕션은 예전의 우리말 공연과는 직접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음악을 통해 느껴지는 만족감이 남다른 무대를 선사한다. 한국 제작사에 의해 꾸려진 팀이다 보니 우리 식 감성에 잘 어울리는 매력도 적절히 안배돼 있다.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에피 화이트 역으로는 브리 잭슨과 브릿 웨스트가, 아름다운 여가수 지나 존스 역으로는 캔디스 마리 우즈가, 여성그룹 드림스의 세 번째 멤버인 로렐 로빈스 역으로는 앙투아넷 코머가 등장해 아프리칸 아메리칸 특유의 소울풀한 감성이 듬뿍 담긴 무대를 구현해낸다. 한편 비열한 매니저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로는 셰비 브라운이, 바람둥이 인기가수 제임스 선더 얼리 역으로는 닉 알렉산더가, 그리고 에피의 남동생이자 팀의 노래를 만드는 음악가 시시 화이트로는 타일러 하드윅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진 버전이라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으냐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공연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시각이다. 일단 공연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외국 배우가 나온다는 의미가 아닌 초연 배우(오리지널 캐스트)가 등장하는 무대를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비록 국내 제작사가 제작한 프로덕션이라도 배우나 스태프 등이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현지 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여타 내한공연들과 비교해서 그리 문제가 되거나 질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점에 따라서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우리 공연을 해외에 내보내는 것을 글로벌화로 보는 편협한 시각을 넘어 보다 다양해진 공연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공식에 흥분도 되고 반갑기도 한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내한공연은 마치 DNA에라도 있을 법한 흑인들의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느낄 수 있어 특히 반갑다. 그냥 '아' 소리를 내더라도 다른 인종이나 국가의 배우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매력적인 무대다. 물론 원작 무대에서는 나오지 않고 영화에서 첫선을 보였던 '리슨'은 이번 무대에서 라이브로 만끽해볼 수 있다. 굳이 비행기 값을 들이지 않더라도 현지 배우들이 꾸미는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게 제일 좋은 매력이다. 자막을 보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를 미리 보고 오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다. 올봄 제일 추천할 만한 좋은 뮤지컬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