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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도 넘은 열정페이…사람잡는 게임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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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업계 '죽음의 크런치 모드' (上) ◆

중견 게임업체 L사에서 최근 퇴직한 A씨는 "게임사에서 일할 당시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입사한 후 석 달간의 수습기간에 단 하루도 자정 전에 퇴근할 수 없었다. 수습 딱지를 뗀 이후에도 밤 10시까지 남아 일을 해야 했다. 주말인 토·일요일도 쉬기는커녕 8시간씩 계속 일했다. 따로 주어지는 추가 근무 수당조차 없었다. 3년차인 A씨 연봉은 2000만원 수준이다. 최근 A씨는 건강검진 때 쓸개에 8㎜ 혹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지만 "일을 할 수는 있는 거냐"는 답변만 들었다.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게임업계 근로관행이 바뀌지 않고 있다. 일부 업체는 게임 개발을 연내에 마쳐야 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주당 '65.5시간' 근무하는 '크런치 모드'를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 5일 동안 매일 9.5시간씩 일하고 토·일요일에도 9시간씩 의무적으로 일하되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추가 야근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4주를 1개월로 치면 월 근로시간은 무려 262시간에 달한다. 이는 전체 근로자 월평균 근로시간인 166.2시간보다 무려 100시간이나 많다. 야근과 잔업이 많은 제조업 평균 근로시간도 180시간에 그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나가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되면 휴일에 8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는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했고 정부는 지난달부터 게임업체에 대한 기획감독에 착수하고 있지만 게임업계의 살인적인 노동 관행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업계에 따르면 총쏘기 게임 등으로 유명한 게임업체 S사 직원들은 최근 회사에서 근태기록을 삭제하자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직원은 "퇴사에 앞서 휴일 근무 정산을 위해 근태기록을 요구했는데 회사로부터 '관련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업계 크런치 모드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회사가 관련 기록을 지운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회사 또 다른 직원도 "지난해 근무기록이 모두 삭제된 것을 최근 확인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회사는 "전산 오류로 인한 문제이며, 회사 차원에서 근태기록을 삭제한 적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 <용어 설명>

▷ 크런치(crunch) 모드 : 게임업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로, 게임 출시를 앞두고 개발팀이 고강도 근무체제에 돌입하는 것을 말한다.

[서동철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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