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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100년간의 흔적이 뒤섞인 익선동 한옥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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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고 구불구불한 익선동 한옥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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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과 전집 등 기존 식당이 몰린 익선동 한옥 골목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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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서울 종로 한복판 익선동 한옥골목을 찾는 건 쉽다.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에 내려서 6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그리고 봄처럼 화사하게 차려 입은 2030청춘들을 따라가면 된다. 구글·네이버 지도에 의지하면 길을 더듬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곤란하다. 자동차는커녕 딱 두 명 정도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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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익선동 풍경. 지난 주말 24일 한 식당에서 판소리 즉흥공연이 펼쳐지자 구경꾼도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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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들어서면 오래된 메주의 꼬릿꼬릿함과 소주의 알싸한 냄새가 밀려온다. 한 식당에서 장단을 맞추는 장구 소리와 함께 '아리아리랑~스리스리랑~아라리가 났네~에헤이' 하는 판소리꾼의 목청이 새어나온다. 문 밖으로 어깨를 으쓱대는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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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익선동 풍경. 지난 주말 24일 한 식당에서 판소리 즉흥공연이 펼쳐지자 구경꾼도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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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영화의 세트장이 아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도 아니다. 익선동 골목은 시간이 춤추는 곳이다. 허름한 식당과 오래된 한복 가게, 그리고 점집으로 시작된다. 의심은 접어두고 2030 웃음소리를 따라가면 한옥을 개조해 '빈티지(vintage)'한 멋을 자랑하는 블로그 맛집·카페와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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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4일 새로 문 연 익선동 프랑스 가정식 식당. 청춘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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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청춘 방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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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자)'로 통하는 독립 운동가 정세권 씨가 조성했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종로통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친일파에게서 익선동 건물과 땅을 사들인 그는 골목골목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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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한옥마을 담벼락.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 정세권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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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신식'으로 개발된 일대에는 소박한 서민의 삶과 화려한 화류계의 삶이 공존했다. 익선동은 '요정 골목'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이비스호텔이 들어섰지만 '국내 1호 관광요정' 오진암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인 1950년대 3대 요정(삼청각·오진암·대원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종로통을 휘어잡았다던 야인 김두한에 이어 제3공화국 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드나들던 단골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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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을 따라 의상실과 점집도 찾아든 익선동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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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과 악사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옷맵시와 연주 솜씨를 책임지는 한복집과 악기점도 따라왔다. 요정을 드나들며 정치권을 엿보던 정객과 삶이 신산했던 기생들이 자신들의 앞날을 궁금해했기 때문에 점집도 같이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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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을 따라 의상실과 점집도 찾아든 익선동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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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을 따라 의상실과 점집도 찾아든 익선동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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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익선동의 오래된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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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 취기가 가득한 발걸음은 21세기 '셀카봉'을 든 발랄한 2030청춘과 '임장(현장 답사를 의미하는 부동산 시장 용어)'을 나온 40~60대 투자자들 방문 행렬로 바뀌었다.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한옥 보전 등을 이유로 개발계획을 부결한 후 3~4년 새 익선동 골목엔 '개성 있는 가게'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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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한옥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지는 익선동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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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한옥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지는 익선동 골목 풍경


"사모님 여기는 평당(기준면적 3.3㎡) 3750만원이에요. 2004~2007년만 해도 2500만~3000만원까지 올랐는데 7~8년 전에 확 떨어졌다가 요즘 다시 오르는데 매물은 거의 없어요." 임장 안내를 맡은 공인중개사 말처럼 익선동 땅값은 부쩍 뛰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개발 얘기도 쑥 들어간 2010년 전후로 2000만원 이하인 1900만원 선(3.3㎡ 기준)까지 떨어졌던 땅값은 올 들어 3500만~4000만원 선으로 가파르게 뛰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2004년 익선동은 도시환경정비구역 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청진동 피맛골처럼 개발을 통해 고층 복합건물을 들인다는 게 당시 서울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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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청춘 방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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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익선동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한 한옥 리모델링 카페에 `만석`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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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추진위원회도 해산한 2014년을 기점으로 골목엔 카페 '뜰안' '식물' '엘리' '프앙디' 등을 비롯해 식당 '거북이슈퍼' '경양식 1920' '이태리총각' 등이 문을 열었다. 맛집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도 올랐다. 너무 오래돼 살기 불편한 한옥은 월세가 20만~30만원 선에 불과했지만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임대료 100만원 선인 리모델링 한옥 가게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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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개발된 익선동 한옥골목엔 기존 거주자와 관광객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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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개발된 익선동 한옥골목엔 기존 거주자와 관광객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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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개발된 익선동 한옥골목엔 기존 거주자와 관광객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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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치솟은 땅값 때문에 기존 주민과 상가세입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예방·대응책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수억 원을 들이는 투자자들 존재가 없다면 목돈이 부족한 청년들이 한옥 매입부터 리모델링·창업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건 여의치 않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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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 개발 얘기가 나온지 10여년, 익선동은 아직 개발과 해제를 둘러싼 갈등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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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시는 2015년부터 한옥마을 보존을 위해 익선동 구역 내 건물을 1~4층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지구단위계획을 준비 중이다. 토지 소유주들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한다. 시는 5월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하려 하지만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계획은 아직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글·사진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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