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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청년이여 투표하여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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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화 청주시상당구선관위 관리주임

충청일보

[이서화 청주시상당구선관위 관리주임]이십대 후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꼬박 7개월 방 안에 틀어 박혀있다 한 일이 식당 주방보조였다. 오전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 6일 12시간씩 노동했고, 바쁜 주말이나 공휴일은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때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선거권이 생긴 이후 투표는 빼지 않고 해왔는데 도무지 그 선거는 참여할 맘이 들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던 내게 선거는 시끄럽기만 한, 공허한 말잔치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나와 같이 주방에서 일하던 예닐곱의 다른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는 그때 그 주방에서 밥알 하나만큼의 구체성도 띠지 못했다.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청년들의 선거 참여율이 왜 저조할까? 국민이 국가에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선거권을 포기하는 건 아이러니다. 지난해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역시 청년층의 투표율은 50%를 조금 웃돈 수준에 그쳤다. 단순한 무관심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청년실업률, 청년자살률 등의 각종 지표들, '삼포세대'와 같은 자조적 신조어들이 선거 참여를 가로막는 청년들의 팍팍한 세상살이를 가리킨다. 후보자ㆍ정당이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가 이미 잿빛 세상에서 힘겨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청년들의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선거 참여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이므로, 투표해야 한다고 독려해 봐도 영 반응이 시원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투표를 권하고 싶은 건 지난해 국선에 다시 참여하면서 새로이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후보자가 나를 위해, 혹은 이 사회를 위해 뭔가 멋진 것을 해주리란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그보다는 투표안내문을 보며 선거인명부 등재번호를 외우고, 투표소를 찾고, 줄을 서 입장해 명부를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기표를 하고,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일련의 행위 자체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그 과정을 공유하고 함께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다. 공동체의 의미가 이제야 피부로 와 닿은 것이다. 내가 찾던 선거의 구체성은 선거에 참여해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었다.

투표는 마치 복권을 사듯 선거일에 한 표 던지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투표는 내가 이 공동체의 일원이며 중요한 의사 결정자임을 확인하는 형식적 절차다. 내가 어떤 후보를 선택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주권자로서 그를 감시할 권리가 있다는 표시다. 그리하여 청년들은 당장의 보상이 없다고 선거를 외면하지 말고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투표를 통해 그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세상이 그를 차갑게 내던져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변화시키려는 자신감을 청년은 투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이 민주주의 공동체를 되살리는 길임은 자명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가 인생 격언이라면 '행복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해서 행복한 것이다'는 민주주의 격언 쯤 될 것 같다. 제19대 대통령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센 현실의 파고에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투표하여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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