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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이정배의 내 인생의 책] ②철학적 신앙 |K 야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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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보다 평화가 소중하다

경향신문

요즘은 달라졌으나 철학과 신학의 관계는 묻고 답하는 상관 법으로 이해되었다. 줄곧 철학의 답을 신학에서 찾았던 것이 기독교 서구 문명이었다. 철학과 신학은 상호 적대적이지 않고 동반자(?)란 것이 통설이었다. 사실 철학 쪽에서도 신학과 적대치 않고 공존의 길을 택했다. 중세뿐 아니라 근세에 들어서도 칸트와 헤겔,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상과 조우하는 신학이 생겨났다. 하지만 야스퍼스는 이런 시각과 단절했다. 철학은 물론 여타 종교도 신학처럼 자기 고유한 신앙을 지닐 수 있다고 본 때문이다. 신학의 거장 카를 바르트와 적대하면서까지 그는 ‘철학적 신앙’의 길을 모색했다.

야스퍼스는 ‘차축시대’란 자신의 역사철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철학적 신앙’을 정초했고 기독교 계시신앙과 맞섰다. 인류의 여타 종교전통을 무화(無化)시키는 배타적, 실증적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 자체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철학적 신앙’이란 이름하에 두 권의 책을 써냈다. 소책자인 <철학적 신앙>과 큰 두께의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이다. 대학 시절 나는 많이 외로웠다. 유교적 가치와 무속신앙을 지닌 가정에서 홀로 신학의 길에 입문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때 이 책을 만나 씨름했던 것이 내겐 자유와 구원이었으며 기쁨이었다. 선친의 신앙과 나의 그것이 저마다 무제약적인 것이기에 상호 적대치 말고 교제할 것을 배운 까닭이다.

이후 나는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을 내면화시켜 그 에토스로 세상을 보았고 책을 읽었으며 교회에서 설교도 했다. 자기 종교만 알면 자기 종교도 모르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이웃종교를 탐방하여 배우라 권한 적도 많았다. 기독교 이후 시대를 살고 있어 개별 종교의 진리보다 평화가 더욱 소중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개혁을 넘어 혁명의 시대에 이르기를 바라며 <철학적 신앙>을 다시 꺼내 펼쳐본다.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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