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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넥스트코리아 뉴어젠더] 코리안 아메리칸의 한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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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첫 안식년을 내가 공부했던 스탠퍼드대학에서 보내고 있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에 아름다운 캠퍼스는 그대로지만 학점과 논문으로 씨름하던 학생 때는 몰랐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고등교육과 발전'이라는 수업을 가르치면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수업에는 코리안 아메리칸은 물론 한국에서 온 조기유학생들도 있는데 이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과 열정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중학교 때 이민을 온 소위 1.5세 코리안 아메리칸인 한 학생은 영어와 한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며 최고의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뭔가 모르게 미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미국 대기업에서 인턴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자기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에 돌아가 일을 해보고 싶고 뭔가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다른 여학생의 경우 남성 중심인 한국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으며, 조기유학생도 한국에 대한 애착은 있지만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 문화에서 많이 멀어진 것 같아 귀국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나에게도 소위 동포로서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사실 나 자신도 한국 대학에서 일을 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나로선 한국의 조직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종종 느끼며 언어나 문화적으로 더욱 편하고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전공 분야인 고등교육의 국제화와 글로벌 탤런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학문적 관심을 떠나 나 자신의 상황과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인재의 이동이 늘어나면서 나처럼, 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처럼 미국과 한국의 문화에 한편으론 익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살든지 양쪽을 오가며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학문적 관심으로 시작한 연구를 통해 그간 고민해 오던 나의 정체성과 커리어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젠 미국과 아시아 대학 간의 교육 교류와 관련된 연구와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소명처럼 느껴진다.

스탠퍼드가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인재들이 수없이 많으며 본국과 미국을 오가는 중국계, 인도계 엔지니어와 기업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여러 사회를 넘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학생들에게도 이들처럼 미국에서 일하고 살더라도 한국을 오가며 자기 분야에서 양국 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의미가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해외 동포나 조기유학생들은 한국의 중요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초저출산 사회에 진입했고,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생산노동인구의 감소라는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해외 인재 유치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재외동포재단 등을 통하여 해외의 한국인들이 모국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다방면에서 문화·교육 교류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고 싶지만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는 부담스러워하는 조기유학생이나 해외 동포들을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특히 이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한국과의 가교 역할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오늘도 스탠퍼드 교정을 걸으며 한국과 미국 대학을 오가며 강의하고 연구할 수 있는 나의 삶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레니 문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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