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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단 1명만을 위한 서비스 늘리는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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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란스미어 한남점에서 맥나니 소속 필화 장인 파울리노 루아노(Paulino Ruano) 씨가 고객이 주문한 그림을 구두에 그려넣어주는 모습을 시연해보이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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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제가 기르는 강아지 사진이 있는데, 이걸 그대로 구두에 그려넣어 주실 수 있나요?"

지난 21일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럭셔리 남성 편집숍 '란스미어 한남점'에선 이색 '아트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한국을 찾은 스페인 명품 수제화 브랜드 '맥나니(Magnanni)' 장인이 직접 '구두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을 시연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구두'를 만드는 맥나니 만의 비결은 바로 구두 옆면에 새기는 '펜 그림'. 장인의 손에서 정교한 펜촉이 춤출 때마다 가죽 위에 고객이 원하는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날 행사에서 그린 그림은 고스란히 스페인으로 옮겨져 오직 하나 뿐인 구두가 돼 고객들의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란스미어가 맥나니 장인을 직접 초청해 진행한 이번 '마에스트로 데 리네아스(Maestro de Lineas)' 행사는 고객들에게 '커스터마이징' 명품 구두를 선사하는 이벤트다. 21일 란스미어 한남점에서 시작한 이번 이벤트는 사흘에 걸쳐 갤러리아백화점,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차례로 열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행사 기간동안 60켤레의 수제화가 총 25명의 주인을 만났다. 한 사람이 4켤레를 한꺼번에 주문하거나, 중동•싱가포르에서 구두 한 켤레를 사기 위해 한국을 직접 찾은 경우까지 있었다.

이번 맥나니의 이벤트처럼, 원래 가치높은 명품에 커스터마이징까지 덧입혀 다른 어떤 물건과도 견주기 힘든 부가가치를 부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패션업계 내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명품이라는 타이틀에만 안주한다면 자사 제품만이 제공하는 고유한 가치를 언젠가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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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란스미어 한남점에서 맥나니 소속 필화 장인 파울리노 루아노(Paulino Ruano) 씨가 고객이 주문한 그림을 구두에 그려넣어주는 모습을 시연해보이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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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니가 '펜화 담긴 구두'를 전세계에 처음 선보인 건 지난해 3월경이다. 사실 맥나니는 오래 전부터 세계 각지서 이번 행사처럼 커스텀 구두를 만들어주는 트렁크 쇼(trunk show)를 간헐적으로 열고 주문제작을 받아 왔다. 다만 그 시절 사용했던 무기는 펜화가 아닌, 60여년 전 개발한 자사만의 가죽 염색 기법. 장인이 하얀색 구두를 집어들고 맥나니가 개발한 숙성 잉크로 직접 염색(핸드페인팅)해 고객이 원하는 색깔을 지닌 구두로 탈바꿈시켜 줬다.

하지만 맥나니 내부에서는 "전통에 안주하는 것만으론 갈수록 높아지는 고객 눈높이를 채워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알폰소 산체스 맥나니 세일즈 디렉터는 "10여년 전부터 핸드페인팅을 내세운 트렁크 쇼를 진행해 왔는데, 항상 똑같은 걸 보여주다 보니 예전에 본 익숙한 얼굴이 식상한 표정으로 매장을 다시 찾았다. 새로운 손님은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면서 "고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치•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번 아이템을 떠올리게 됐다. 런칭 전까지 3년 간 잉크를 먹을 수 있는 가죽, 그림의 보존 방법 등을 연구해 철저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맥나니를 초청해 핸드페인팅 이벤트를 연 바 있는 란스미어 관계자도 "당시에는 염색을 통해 아름다운 색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희소가치가 있었지만, 여러 브랜드가 비슷한 서비스를 새로 선보인데다 국내 일부 젊은층마저 이에 도전하며 상대적으로 '흔한' 활동이 되고 말았다"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펜화 드로잉은 맥나니 외에 실시하는 곳이 없어 여전히 독특한 희소가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맥나니 외 다른 브랜드에서도 '가치'를 중시하는 고객을 끌어모으고,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커스터마이징 제공에 무게중심을 두는 추세다. 구찌는 지난해 6월 자사 핸드백에 대한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수와 장식, 이니셜 등 아이템을 자유롭게 배치해 개인 취향에 따라 가방 구성을 바꿀 수 있다.

구찌는 이와 같은 서비스를 재킷•턱시도•신발 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점진적으로 넓혀나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루이비통•돌체앤가바나 등 내노라하는 명품 브랜드가 자사 제품에 자유로이 이미지를 넣을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LF가 전개하는 프랑스 브랜드 바네사브루노가 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지난 2월 말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하는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했다.

추세를 따라 '새로운 가치' 부여에 나선 맥나니의 시도는 대성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체스 디렉터는 "행사 론칭 이후 맥나니 홈페이지에 '다음 행사가 언제 어디서 열리느냐. 내가 찾아가겠다'고 물어오거나 '행사를 우리 지역에서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고객 문의가 급증했다"며 "특히 일본•중동 지역에서 관심이 대단한 편"이라고 전했다.

맥나니는 지난해 3월 론칭 이래 동일 행사를 약 15회 치러 왔지만, 다음 1년 간에는 회수를 크게 늘려 전세계 각지에서 25회 가까이 개최할 예정이다. 아울러 아직 맥나니의 발길이 일부 지역에 한정된 중국에서도 이벤트를 열어 '가치소비' 중시 소비자를 끌어모은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이 날 펜화 드로잉을 맡은 파울리노 루아노 장인은 "어떤 고객은 가족 한 사람의 얼굴 사진을 가져와 구두에 넣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며 "지금까지 한 작업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림을 본 고객이 행복에 젖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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