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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美 시리아·아프간폭격, 北행동변화 효과 없을 듯"(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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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신호로선 불명료, 후속신호 부재, 주변환경은 반대신호 등 이유

역사적으로도 대외정책 `신호 효과' 증거 없어…"오신 잦고 전쟁 초래하기도"

뉴욕타임스 "아프간 폭격, 항모 칼빈슨 모두 전략적 이유 아닌 현장 지휘관 판단"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사용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에 북한을 비롯해 미국의 적들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미정부와 전문가들은 믿고 있지만, 이런 신호가 작동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없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시리아 향해 미사일 발사하는 美구축함. [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7일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포터'가 지중해 동부해역에서 시리아 공군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도리어 신호는 그것을 보내고 받는 과정에서 오신·혼신이 자주 빚어지고 그 때문에 때때로 전쟁과 같은 재앙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외정책 신호 보내기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워싱턴대 정치학자 조너선 머서는 지금까지 연구에서 시리아와 아프간 폭격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입증하는 증거는 전혀 없다며 이런 식의 추론에 "머리가 돌 지경"이라고까지 말했다.

다트머스대 정치학자 제니퍼 린드 역시 "'북한이 아프간 폭격을 보고 우리한테 함부로 까불지 못할 것'이라고 누군가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직감일 뿐,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나 이론은 없다"고 말했다.

신호가 효력이 있으려면 신호 내용이 명확해야 하고 후속 행동을 취할 역량과 의도를 과시하는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시리아와 아프간 폭격은 북한이나 러시아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명료치 않다고 이들 학자는 지적했다.

북한과 러시아에도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인가 아니면 그저 트럼프가 기분에 따라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인가, 무력사용 위협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 등에 대해 "미국인들의 해석도 일치하지 않는데, 멀리 떨어진 북한이나 러시아 지도자들이 신호의 명확한 뜻을 감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머서 박사는 말했다.

모호성이 외교 정책에서 유용할 때도 있지만, 적의 셈법을 바꾸려는 행동이라면 명료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 결과다. 국가는 불명료해서 읽을 수 없는 신호는 무시하고 자신들이 확실하다고 보는 신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아프간에 대한 폭격 작전과 그것이 안고 있는 위험성이 대북 군사공격에서 사용할 작전이나 위험성과 전혀 다른 점도 북한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시리아 등에 대한 폭격은 "제한적 영향을 가진 저위험 공격"이어서,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이 안고 있는 위험과 그 결과의 중대성"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로런스 프리드먼 전쟁학 명예교수는 설명했다.

북한이 미국의 대한안보공약을 정말로 믿는 것은 미국 지도자들의 구두 공약이나 사나움 때문이 아니라, 수만 명의 미군이 북한의 발사선(Line Of Fire) 안에 주둔하고 있어서 북한의 침공으로 미군이 사망하면 미국이 반격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컬럼비아대 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 같은 미국의 적들이 미국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더라도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북한이 신호를 믿고 행동을 바꾸도록 만들려면 더욱 구체적인 후속 또는 관련 신호가 필요한데, 한반도 인근 일본과 괌 주둔 미군의 배치 상황이나 한미 관계 현황, 기타 수십 가지 일상적인 미국의 행동 등 "사실상 모든 것이 미국의 정책은 지금까지처럼 북한과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변함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머서 박사는 특히 지난주 항모 칼빈슨의 '실종' 사건을 들어 "(미국의 신호의도와 상관없이) 제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는, 혹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 지도자들은 트럼프 시대 미국의 공약에 대해 자신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바를 확인하는" 사건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미국의 신호가 그 신호로 겨냥한 측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미국 외교 정책의 대표적인 오산 사례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들었다.

1950년대 미국 정책수립자들은 소련의 위협에 직면한 유럽 동맹들을 지키겠다는 의지 입증을 위해 한국전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후일 역사가들이 검증해본 결과 정작 유럽과 소련 지도자들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 유럽 안보공약은 무관한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도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 확산 야심을 막겠다는 미국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미국 정책수립자들은 믿었으나, 비밀해제된 소련의 기록들을 보면 소련 지도자들은 미국이 왜 베트남에 개입했는지 의아해하며 자신들의 대외정책에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또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그에 이은 미국의 참전은 이라크와 미국이 서로 신호를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됐다는 연구도 있다.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하겠다는 신호를 당시만 해도 파트너로 여겼던 미국에 보냈는데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정지신호가 없다고 믿고 침공했지만, 미국은 당시 후세인의 셈법과 신호를 잘못 읽고 있었다고 미 국무부 고위직을 지낸 찰스 A. 듀얼퍼와 정치학자 스티븐 베네딕트 다이선은 설명했다.

이는 국가 간 신호를 정확히 보내고 받는 것의 어려움,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때의 심각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두 연구자는 말하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뿐 아니라 때때로 재앙적인 결과를 빚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신호가 (신호를 보내는 쪽의) 입장을 제대로 전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머서 박사는 강조했다.

한편, 항모 칼빈슨의 행방을 둘러싼 혼란의 발단이 됐던 지난 9일의 서태평양 '북상' 발표는 대북용이 아니라, 호주 프레맨틀 항에서 칼빈슨 항모전단의 장병들을 기다릴 가족들에게 프레맨틀 항 기항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일 보도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단소속 장병들이 상륙허가를 받아 친척들을 만나러 배를 떠나는 모습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 기항을 취소했을 뿐인데, 제3함대 공보장교가 '북상' 발표를 하면서 호주와 연합훈련을 한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칼빈슨함이 곧바로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는 것으로 오해됐다는 것이다.

칼빈슨함이가 8일 실제로는 인도양을 향해 남진을 시작한 상황에서 9일 북상 발표를 공개적으로 바로 잡으려 하면 미국 국익이 훼손되고 북한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고 일부 미 국방부 관리들은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때의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말은 중요하다"며 "이번 실수로 인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신뢰도 깎일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프간에 대한 '모든 폭탄의 어머니' 폭탄 투하에 대해서도 당시 즉각 대북 신호라는 해석이 많이 제기됐으나, 실제론 존 니컬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그런 전략적 의미 없이 현지의 전술적 목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실제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반응은 "다른 국가에 메시지를 보내려 한 것은 아니었다. 메시지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안은 노련한 4성 야전사령관이더라도 자신들의 작전상 결정이 가져올 더 넓은 정치적 혹은 전략적 파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야전 사령관들에게 재량권을 폭넓게 넘겨준 것에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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