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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시진핑을 ‘찐만두’로도 ‘스트립댄서’로도 그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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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 반체제 시사만화가 왕리밍 한국언론 첫 인터뷰

‘표현의 자유상’ 수상…현재 일본 사실상 ‘망명’중

“귀국 생각못해… 중공 무너지면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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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사만화가 왕리밍(44)은 일본에 살면서 각종 일본·미국 매체에 만평을 그리고 있다. 왕리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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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정치 만화를 그리는 것은 굉장히 고독하고 압박이 큰 일이다. 이번 상은 내게 정신적으로 큰 격려다.”

최근 영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기구 ‘인덱스온센서십’으로부터 ‘표현의 자유상’을 받은 중국 시사만화가 왕리밍(44)은 21일과 24일 <한겨레>와의 전화 및 메신저 인터뷰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현재 사실상 망명 상태로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는 그는, “중국에서는 정치 만화를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장래가 없다”고 말했다.

왕리밍이 지난 1월 일본에서 출판해 베스트셀러가 된 단행본 <거짓말쟁이 중국공산당>을 보면, “10명도 채 되지 않는” 중국 정치 만화가들은 창작 활동에 한계가 뚜렷하다. 자칫 ‘선’을 넘으면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2009년부터 활동해온 왕리밍은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다. 그는 시 주석을 찐만두에 빗댔고, 전세계에 돈을 뿌리는 스트립댄서로 묘사했으며, 대형 정치행사인 양회(전인대·정협)의 각종 통제조처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또 홍콩의 친중파 시위를 야유했다. 당국은 그의 창작 활동의 경로를 차단시켰다. 그는 “내 이름으로 개설했다가 폐쇄당한 웨이보(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이 족히 200개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에는 유치장 구금 조처를 겪었다.

2014년 첫 해외여행이었던 일본 여행 도중 일본인들의 친절함 등 일본의 좋은 점을 부각시킨 만화를 그렸다가, <인민일보>에 ‘친일’, ‘배신’이라며 체포를 종용하는 글이 실렸다. 협박 메일이 쏟아졌고 그는 결국 귀국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팬’이자 ‘탈-애국주의’ 동지인 아내와 함께 일본에서 생활중이다. 왕리밍은 “일본에서 첫 1년은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 있었지만, 책을 출판하고, 일할 기회가 계속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뉴스위크 일본어판>과 <차이나디지털타임스> 등 미국·일본 매체에 정기적으로 만평을 그리고 있다.

언제 중국에 돌아갈 것 같냐고 묻자, 왕리밍은 “지금은 생각도 못한다. 중공이 무너지면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그는 위협을 느꼈다. 지난해 말 취업비자를 얻기 위해 주위에서 추천하는 수속대행업자에게 맡겼다가, 업자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연락을 끊었고 결국 비자를 받지 못했다. 왕리밍 부부는 중국 당국이 방해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현재 이들은 불법 체류 상태가 돼버렸다. 왕리밍은 “이론적으로는 강제출국당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직업 활동을 하고 있어 고의로 불법체류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자료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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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중국공산당>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찐만두로 묘사되고, 작가 왕리밍은 자신의 필명대로 ‘고추’로 그려진다. 왕리밍·신조사 제공


왕리밍은 앞으로도 중국 관련 정치 만화를 계속 그릴 계획이다. 한국에도 <거짓말쟁이 중국공산당>이 소개되기를 바란다. “중국인이 외국인에게 중국 정치를 설명해주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책에 수없이 등장하는 판다가 동물원에서 보는 귀여운 이미지의 판다가 아니라 여러 기관 소속의 무서운 ‘정치 경찰’ 캐릭터인 것도, 중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배경이 있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중 한 기관인 ‘궈바오’(國保·국가안전보위부)를 동음이의어 ‘궈바오’(國寶·나라의 보물)에 빗대 ‘판다’로 부르기 때문이다.

왕리밍의 필명 ‘볜타이라자오’는 한국어로 ‘변태고추’라는 뜻이어서 오해를 받기 쉽지만, 현대 중국어 구어에서 ‘볜타이’는 ‘특별할 정도로 심한’의 뜻으로도 쓰여서 ‘볜타이라자오’는 ‘아주 매운 고추’ 정도의 느낌이다. 한국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그에게 필명의 오해 소지를 설명하자, 왕리밍은 당혹스러워하며 “생각지도 못했다. 영문 필명인 ‘레벨(rebel·반역) 고추’로 소개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민주화 프로세스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며 “끊임없이 적대시할 대상을 필요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한, 중-한이든 중-일이든 진정한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제기되는 ‘친서방’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중국이 더 나아지려면 더욱 현대화해야 하고 더욱 서방화해야 한다”고 잘라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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