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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경산 농협강도 "권총 15년 전 주워 보관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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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습득 후 승용차 트렁크에 보관"

생활고 속 6명 가족 생계 책임지던 가장

아버지에게서 이어 받은 1억원대 부채

이웃들 "평소 성실했던 사람인데…충격"

지난 20일 경북 경산시 한 농협에서 발생한 총기 강도 사건에서 사용된 권총이 미국 레밍턴 랜드사(REMINGTON RAND INC)에서 제조한 제품으로 밝혀졌다.

총기에 적힌 모델명(M1911A1)으로 미뤄봤을 때 1942~1945년 사이 제조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붙잡힌 김모(43)씨는 이 권총과 실탄을 2003년 직장 상사의 지인이 사는 주택 창고에서 우연히 주워 15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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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발생한 경북 경산시 농협 총기 강도 사건에서 피의자 김씨가 사용한 45구경 권총. 미국 레밍턴 렌드사가 1942~1945년 사이 제조한 제품이다. 경산=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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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3년 직장 생활을 할 당시 상사의 심부름으로 경북 칠곡군에 있는 상사 지인의 주택을 찾았다. 상사가 갖고 오라고 지시한 물건을 찾으러 주택 창고로 들어갔다가 권총과 실탄을 발견했다. 권총은 45구경 탄창식이었다. 실탄은 총 19발이 탄창 3개에 나눠 끼워진 상태였다. 김씨는 호기심에 권총과 실탄을 챙겨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몰래 보관했다. 평소 권총을 꺼내 닦기도 하면서 소중히 다뤘다고 한다. 정상진 경산경찰서장은 "직장이 어디였는지, 지인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밝힐 순 없지만, 총기와 관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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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발생한 경북 경산시 농협 총기강도 사건 관련 증거물품들을 24일 경찰이 공개했다. 경산=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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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범행을 벌인 이유에 대해 "빚이 많아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 앞으로는 1억원이 조금 넘는 부채가 있었다. 이 빚은 10여년 전 작고한 김씨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빚으로 알려졌다. 2007년 고향인 경산으로 귀촌한 김씨는 대추·복숭아 등 과수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수 년째 농사 작황이 좋지 못해 빚을 청산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김씨는 어머니(66)와 부인(41), 자식 4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의 주도면밀한 범행 계획도 드러났다. 김씨는 범행 한 달여 전부터 농협을 털기로 결심하고 범행 도구와 도주 경로 등을 준비했다. 범행 현장인 자인농협 하남지점 주변을 6차례에 걸쳐 사전 답사했다. 범행 당일에도 55분 전부터 현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김씨가 차량 블랙박스 등에 포착되기도 했다. 범행 직후 김씨는 미리 계획한 대로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따라 달아났고, 3.5㎞ 떨어진 곳에 세워둔 자신의 1t 화물차에 자전거를 싣고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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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발생한 경북 경산시 농협 총기 강도 사건에서 피의자 김씨가 도주에 사용한 자전거. 경산=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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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난 김씨는 자신의 집 창고에서 범행 당시 입었던 옷을 태웠다. 그리고 집으로부터 700m 거리에 있는 3m 깊이의 지하수 관정에 권총과 실탄을 버렸다. 빼앗은 현금은 창고에 숨겼다. 범행 다음날엔 1년에 한 번씩 있는 모임에 가족과 함께 참여하기 위해 충북 단양군 한 리조트로 갔다가 22일 오후 6시47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55시간 만이었다. 가족들은 그때까지도 김씨에게서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가 진술한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따지고 있다. 특히 상사 지인의 집에 갔다가 권총과 실탄을 발견했다는 진술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김씨는 상사의 지인이 현재 사망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이 역시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또 범행에 쓰인 권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감식하고 있다. 아직 찾지 못한 실탄 7발도 지하수 관정에 여전히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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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북 경산시 남산면 자인농협 하남지점에서 1563만원을 훔친 용의자 김씨가 권총과 실탄을 버린 주거지 인근 지하수 관정. 경산=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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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55분쯤 경산시 남산면 자인농협 하남지점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현금 1563만원을 빼앗고 달아난 혐의(특수강도·불법총기소지)를 받고 있다. 경찰은 23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김씨가 살던 지역 주민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자주 찾았다는 식당 주인은 "수확을 마치면 대추 몇 알을 들고 와 이웃과 나눠 먹던 착한 사람이었다.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지역 치안센터장으로 근무하는 경찰은 "혹시 도박 때문에 빚이 생겼는가 싶어 알아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액의 빚은 아버지에게서 그대로 떠안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자율방범대 활동도 성실하게 했고 평소에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런지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산=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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