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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행복산책]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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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으면 무조건 행복? 액수보다 쓰는 방법이 중요

'한 번에 다'보다는 나눠쓰고 '혼자'보다 '남과 함께'여야

부자들이 행복하다면 함께 누리는 사람 있기 때문

조선일보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스크루지는 전 세계인이 아는 구두쇠의 대명사다. 돈은 많지만 그 누구도 스크루지를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돈 자체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생이다. 돈에 대한 행복 연구의 초점도 그래서 최근 바뀌고 있다. 가진 돈의 액수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행복감을 높이는가에 주목하는데, 여기서 몇 가지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돈을 자신보다 남을 위해 쓰라는 조언을 한다.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얘기 같지만, 많은 연구에 의해 검증된 현상이다. 대학생들이 용돈을 자신의 물건을 사는 데 쓴 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령, 선물 구입) 쓴 날의 행복감을 비교해보면, 타인을 위한 구매가 많은 날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당사자들도 예측은 반대로 한다. 자기 물건을 사는 날 더 행복할 것이라고 잘못 믿는다.

둘째, 큰 구매를 여러 번의 작은 구매로 나누는 것이 유리하다. 20만원짜리 한우 세트 한 번보다 10만원 세트를 두 번 사 먹을 때 얻는 행복의 총량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연구가 있다. 새 안마기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감 평가를 부탁하면, 같은 안마기를 20분 연속 체험할 때보다 그것을 10분씩 나누어 체험했을 때 만족감이 더 크다. 즐거움도 적응하면 무디어진다. 따라서 한 번에 오래 경험하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잘게 썰어 각각의 조각을 음미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조언은 가급적 물건이 아닌 경험을 사는 데 돈을 쓰라는 것이다. 시계나 구두보다 여행이나 콘서트 표에 돈을 투자하라는 뜻이다. 새 구두는 몇 번 신고 신발장에 모셔 두지만 좋은 경험이 남기는 잔상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물건은 늘 사회 비교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지만, 경험은 온전히 나만의 소유물이 된다. 그러나 경험 구매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사회적 맥락에서 소비된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함께 좋은 추억을 갖기 위해 여행을 하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를 한다. 결국 무엇을 사느냐보다 그것을 누구와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행복의 관건이다.

돈이 많으면 무조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상일 뿐이다. 행복에 대한 예상과 실제로 경험한 행복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가령, 미국인들은 옥수수밭이 펼쳐진 중부보다 멋진 해변과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 두 지역의 행복 값은 차이가 없다. 항상 쾌청한 하늘은 정작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상이다. 행복에 대한 예측이 이토록 어설프기 때문에 400년 전 프랑스의 현인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는 이런 제안을 하였다,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탐하기 전에, 그것을 실제로 가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하는가를 우선 관찰하라." 즉, 행복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 전에, 냉정한 관찰을 우선 하라는 것이다.

행복한 부자를 보면 그가 짓는 미소의 원천은 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부자가 행복한 이유는 그가 가진 것을 함께하며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그 누군가가 그의 인생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가 행복한 이유가 그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곁에서 함께 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사회가 유복해질수록 돈과 행복에 대한 질문도 바뀐다. 돈이 얼마나 있는가보다 돈으로 얻은 것을 함께하며 음미할 사람이 과연 곁에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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