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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남아도는 쌀]④ '잃어버린 밥맛 되찾기'…대안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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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표시 의무화 등을 통한 '믿고 찾을 고품질 쌀' 공급해야

타 작물 심어 생산 조절…가공제품 개발로 추가 소비영역 확보도

연합뉴스

공공비축미 [연합뉴스 자료 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이승형 기자 = 식습관 변화로 1인당 연평균 밥쌀 소비량이 30년 동안 절반 이상 줄었고 이 같은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남아도는 쌀 문제에 대응할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처방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쌀 소비 촉진 캠페인, 홍보 등 긍정적인 인식 개선과 소비 확대 사업은 쌀 소비 감소를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국민 1인당 연평균 밥쌀 소비량은 1979년 135.6㎏에서 지난해 61.9㎏으로 줄었다. 1990년 이후 매년 2% 정도 줄고 있다. 2024년에는 53.4㎏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쌀 생산량은 재배면적 감소에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하면 쌀 재고량은 더욱 쌓여갈 수밖에 없다.

쌀 생산량 조절과 기존 밥상 이외에 새로운 쌀 소비처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와 자치단체, 전문가는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 재배를 유도해 생산량을 줄이고 쌀 가공제품과 쌀가루 산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국민의 잃어버린 밥맛을 다시 찾아 쌀 중심인 식습관을 어느 정도 회복하도록 다수확 쌀 비중을 줄이고 고품질 생산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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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 촉진 [연합뉴스 자료 사진]



◇ 등급표시 의무화·소비자 권장 기간 표시제 서둘러야

최근 몇 년 풍년으로 쌀 재고가 넘쳐나자 정부도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장기 쌀 수급 안정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5년에야 중장기 쌀 수급 안정대책을 처음 마련했다. 그 뒤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하자 지난 2월 보완대책을 수립해 발표했다. 더디기는 하지만 정부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쌀 재고 문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모습이다.

2015년 이전에는 벼 수확기 작황에 따라 풍년과 흉년 때 단기 대책만 세웠을 뿐 중장기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풍년이면 쌀을 격리하고, 흉년이면 피해를 보상하는 수준에 그쳤다.

과거에는 2∼3년마다 풍년과 흉년이 반복해 쌀 수급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4년 연속 풍년으로 쌀 재고가 심각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쌀 가공식품 품평회, 브랜드 쌀 선정, 식생활 개선 교육, 캠페인 등 소비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시행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만큼 특단의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사업에도 소비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감소율을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로는 어떤 게 있을까.

전문가들은 등급표시 의무화를 먼저 꼽는다. 정부는 소비자가 좋은 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쌀 고품질화를 촉진하기 위해 2004년 이미 등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특, 상, 보통'에다 '미검사' 표시 항목을 추가하는 바람에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 등급 검사를 하지 않고 미검사 표시를 하면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0월 양곡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미검사 항목을 삭제하고 반드시 등급표시를 하도록 했다. 유통업체는 자체 검사를 거쳐 기준에 따라 특, 상, 보통으로 나타내고 기준에 미달하면 등외 표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유통업체 포장재 준비 등을 위해 1년간 시행을 유예해 올해 10월 14일부터 사실상 등급표시를 의무화한다. 이번만은 등급표시 의무화가 계획대로, 제대로 시행될 수 있는 정부는 추진력을 보여야 한다.

소비자 권장 기간 표시제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의 취지는 밥맛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기간을 명시해 소비자가 정보를 보고 좋은 쌀을 고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통기한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날짜가 지나면 사실상 판매가 어려워 유통업체 등 일부 반발이 있지만 좋은 쌀을 유통하고 소비를 확대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도입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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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가공식품 [연합뉴스 자료 사진]



◇ 논에 타 작물 재배로 생산 조정

정부와 자치단체, 전문가들은 쌀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재배면적을 줄여 생산량을 조정하고, 쌀 가공제품과 쌀가루 산업 육성으로 추가 수요처를 확보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적정생산을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논에 다른 작물 전환 등 재배면적 감축에 나섰다.

이를 통해 지난해 재배면적 2만600㏊를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3만5천㏊를 감축하기로 하고 지방자치단체별로 목표면적을 설정해 실적을 시책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경북의 경우 올해 논 1천100㏊에 다른 작물을 심는다.

도와 시·군비 33억원으로 다른 작물 재배에 따라 소득이 줄어드는 부분을 보전해준다.

도는 1천㏊를 다른 작물로 전환하면 쌀 생산량이 5천600t 줄고, 같은 양의 쌀 재고 3년 보관비용 42억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이를 확산하면 공급과잉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작물 자급률을 높일 수 있고 농경지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쌀이 부족하게 되면 다시 벼를 심을 수도 있다.

◇ 쌀 가공제품·쌀가루로 소비영역 확대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가공식품 육성과 소비 확대를 위해 올해 전국 4곳에 라이스 랩(Rice Lab)을 시범 운영한다. 라이스 랩은 쌀 가공식품 아이디어나 시제품이 있으나 상품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나 업체가 식품 개발, 시식·판매할 수 있는 시험 공간이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가공식품을 키우고 제품도 다양화하지만, 영세한 업체가 많은 데다 쌀가루 제품은 밀가루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인지도도 낮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다양한 방식으로 쌀을 소비하도록 제품을 개발하고, 국내외 소비시장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 정책을 중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쌀가루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경북도 사례가 모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경북도는 올해 시범사업으로 쌀가루와 밀가루 가격 차액과 가공비 일정액을 업체에 지원해 안정적으로 쌀가루를 사용하도록 한다. 전액 도비로 올해 시범사업을 하는 만큼 효과가 나타나면 정부와 협의해 전국으로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쌀가루가 밀가루보다 2배 정도 비싼데 차액 가운데 70% 정도 보전해주면 식품업체에서 제품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고도 쌀가루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쌀가루 대량 소비를 위해 한시적 강제규정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쌀 관련 정부지원을 받는 가공업체가 제품 원료 5% 이상을 국산 쌀가루를 쓰도록 의무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도청센터장은 "쌀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가루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국내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쌀가루를 포함한 식품 유용성을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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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들녘 [연합뉴스 자료 사진]



◇ 다시 밥상에 앉도록 고품질 쌀 생산에 집중…소비 촉진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이야기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먹을거리 다양화와 식습관 변화로 그만큼 주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품질 쌀로 승부를 걸면 예전만 못하더라도 다시 밥을 찾는 이들이 늘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가 최고 밥맛을 즐길 수 있는 우수한 쌀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다수확 품종 보급을 배제하고 고품질 쌀 재배단지를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소비자가 믿고 만족하는 명품 쌀 브랜드 육성도 중요하다. 고품질 쌀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품질 차별화가 미흡해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평가다.

브랜드가 너무 많아 소비자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전국 쌀 브랜드는 1천600개를 넘는다. 브랜드 수를 줄이는 대신 대표 브랜드를 키워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또 한 지역에서 나는 여러 품종 쌀을 같은 브랜드로 사용하기보다 우수한 단일 품종만으로 상표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브랜드 쌀로 지은 밥맛도 뛰어나고 소비자도 더욱 신뢰할 수 있다.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소비자 기호에 맞는 밥맛이 좋은 쌀이 나오면 다시 밥을 찾는 이들이 늘 것으로 본다"며 "좋은 쌀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명품 쌀 브랜드, 생산연도, 도정 일자 등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비 확대를 위해 명품 쌀 생산과 함께 늘어나는 1인 가구와 노인 가구에 맞는 쌀 소포장 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경북도는 소비 증대를 위해 식생활에서 사용하는 요리재료인 밀가루 5%를 쌀가루로 대체하는 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경북에서 연간 4천400t, 전국에는 8만t의 쌀소비효과를 거둘 수 있다.

h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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