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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만물상]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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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찬란한데 학생들은 이즈음부터 초조해진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학생부 종합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정시모집… 복잡한 입시는 그렇다 치고 당장 학교 내신부터 잘 받아야 한다. 선생님들이 낸 함정문제를 어떻게 피해 나갈까, 아이들은 오늘도 머리를 싸맨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고교생 딸이 "시험 기간 잠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함께 웃었지만 미안했다.

▶4년 전 유니세프는 어린이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네덜란드를 꼽았다. 한 네덜란드 작가가 그 비밀을 여덟 가지로 풀었다. 요약하면 부모가 스트레스 없고, 학업 부담 적으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숙제가 거의 없고 시험으로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면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도와준다. 아침 식사는 늘 가족이 함께하는 문화가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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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선 유대인도 비슷하다.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서 아이들은 세대를 이어온 지혜를 배운다. 부모와 함께 정기적으로 식사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또래보다 삶의 만족도가 22% 높다고 한다. 만 2세부터 사(私)교육을 받아야 하는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루에 학원 몇 개를 뺑뺑이 도는 아이들은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게 사치다.

▶그제 OECD가 48개국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했다. 예상대로 한국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상위권에 핀란드,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스위스가 자리 잡았다. 한국 학생 75%가 성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반면 부모·자식 간 대화는 부족해 '아이와 매일 대화한다'고 답한 부모는 53.7%에 그쳤다. '공부는 잘하는데 행복하지 않은 나라'. OECD가 정의하는 한국 사회다.

▶올 초 미국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The happiest kids in the world), 네덜란드의 길'이란 책이 발간됐다. 2013년 발간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The smartest kids in the world)과 짝을 이룬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에 한국 교육은 이렇게 묘사된다. "학생들은 하루 12시간 학교에서 지내며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일과를 보낸다. 한국 교육은 압력밥솥, 한국 학생들은 아동 철인(鐵人)경기 출전자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대선(大選)판에 숱한 장밋빛 약속이 난무하는데 속 시원한 해법은 들리지 않는다.

[안석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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