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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Why] 중원을 지향하던 중국인들, 왜 요즘들어 변방을 기웃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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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國運風水]

조선일보

한민족의 미래 영토를 상기시켜 주는 ‘만주원류고’ ‘조선상고사’ ‘Volk ohne Raum’. / 김두규 제공


독일어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우리 학자들은 흔히 생활공간·생존공간·생활권 등으로 번역한다. 엄밀히 그것은 한 민족의 생존을 위한 '미래의 영토'를 의미한다. 독일의 지정학자 라첼(F. Ratzel)과 군인출신 학자 하우스호퍼(K. Haushofer)가 개념화하는데, 이것을 문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그림(H. Grimm)의 '영토 없는 민족(Volk ohne Raum·1926)'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1920년대 독일의 암울한 정치·경제 문제 해결책으로서 외국 땅을 생존공간으로 획득(점령)할 것을 주장한다. 이 소설은 당시 독일의 베스트셀러로 히틀러의 든든한 이론적 배경이 됐다. 따라서 레벤스라움은 이데올로기적 용어이다.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논리도 바로 이 레벤스라움을 차용한 것이다. 레벤스라움을 주창한 하우스호퍼가 1909년부터 2년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장교들을 교육한 결과물이었다.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도 레벤스라움적 발상이다. 당시 힘이 약한 유비가 북쪽의 조조, 동쪽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가진 뒤 훗날 중원(中原)을 도모하자는 것이 그 핵심이다. 중국인들에게 중원은 '천하의 한가운데에 있는 들판'으로서 중화문명의 핵심지이며 그 주체 세력은 한족(漢族)이었다. 따라서 "중원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 변방은 '오랑캐'들이 사는 곳이었다. 당연히 우리 민족도 '동쪽 오랑캐[東夷]'에 지나지 않았다.

10세기 이후 지금까지 중원을 차지한 왕조는 송(宋)·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중화인민공화국 등이다. 이 가운데 한족이 주체가 된 국가는 송과 명 그리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뿐이며, 그 나머지는 거란족·몽고족·여진족 등 변방 민족이었다.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정사인 25사(史)에 이들 역사를 중국 역사로 수용하고 있다. 이민족이라도 중원을 차지하면 중국의 역사로 받아들였다. 천하의 중심국으로 중국이 존재해왔던 이유였으며 대국인다웠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의 새로운 실크로드 경제권)'와 같은 국가 전략으로 새로운 레벤스라움을 제시하고 있다. 중원 지향적이 아닌 변방 지향적 영토 관념이다. 요 몇 달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애꿎게 방해하고 있다. 전통적 대국인 모습과 다르다.

몇 년 전 중국이 추진하던 '동북공정'이 떠오른다. 동북공정이란 만주 땅(동북 3성)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었다. 만주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러 비로소 중국에 편입된다. 이전까지 그곳은 고조선의 후예인 기마 유목 민족의 터전이었다. 부여·고구려·발해·거란·금·청 등이 명멸하였지만 모두 고조선의 후예들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여진·선비·몽고·흉노 등은 우리와 동족"(조선상고사·1931년 조선일보 연재)임을 주장한다. 단재만의 주장이 아니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란 역사서가 있다. 청 건륭황제의 지시로 1777년 편찬되었다. 만주를 터전으로 삼았던 부여·삼한·백제·신라·발해·여진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든다. 우리 민족 이야기 같은데 대청제국을 건국한 여진족 이야기이다. '만주원류고'는 "당나라 때 계림(鷄林)으로 일컬어졌던 곳은 길림(吉林)이며 신라·백제 등 여러 나라도 이 지역에 있었다"고 적는다. 우리 민족의 터전이 백두산 이남이 아닌 만주 땅임을 청제국의 관찬서가 밝히고 있다. 우리 민족의 레벤스라움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만주원류고'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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