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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 80년대 잣대로 블랙리스트 무죄 주장한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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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의 공직자 8667명 숙정 사건

“강압에 의한 것 아니다” 판례 제시

재판 중인 직권남용 혐의 반박

중앙일보

김기춘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재판받고 있는 김기춘(78·수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에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 사례를 참고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국보위란 전두환 전 대통령이 79년 12월 12일 군부 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행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세운 초헌법적 임시 통치기구다. 국보위가 80년 7월 공무원 숙정(肅正·부정을 엄격히 단속하여 바로잡음) 계획의 일환으로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일괄사표를 받아 선별 수리한 적이 있는데 이 처분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달라는 게 의견서의 내용이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 최규학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 등 1급 공무원 6명에게서 일괄 사표를 받고 이 중 3명의 사표를 수리할 것을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과거 대법원 판례로 자신의 혐의를 반박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국보위는 총 8667명의 공직자를 숙정했으며, 이때 자리를 빼앗긴 2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232명이었다. 또한 국보위 시절은 김 전 비서실장이 대검찰청 특수1과장으로,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 억울하게 쫓겨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직원들은 90년대 들어 면직무효 확인 소송 등으로 법정투쟁을 시작했지만 패소했다. 김 전 실장이 제시한 99년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80년 공직자 숙정 계획을 세우고 전두환 등이 벌인 내란행위를 구성하는 폭동의 일환에 해당한다는 점만으로 원고의 사직원 제출행위가 강압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김 전 실장 측은 이를 근거로 “장관 교체기에는 1급 공무원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직원을 냈더라도 사직원을 권유하는 행위를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 방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 측은 2003년 3월~2014년 12월 각 부처에서 벌어진 1급 공무원 일괄사표 제출 사례 11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견서를 전달받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즉각 반박 서면을 제출했다. 특검팀은 “99년 판결은 의원 면직 형식으로 사라진 공무원 신분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되돌릴 수는 없다는 판단에 불과해 성격이 다르다”고 밝혔다. 또 “당시 숙정은 직업공무원제도를 침해하는 위헌·위법한 조치라는 학계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에 발생한 1급 공무원 일괄사표 제출 사례 11건에 대해서는 “11건 중 5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했으며, 이 중 4건은 김 전 비서실장 취임 후 1년 내 벌어진 일”이라며 “그 자체가 인사권을 수단으로 한 직권남용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라고 되받았다.

지난 19일 김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증인으로 출석한 송수근 문체부 1차관(장관 대행)은 “김 전 비서실장 측이 국보위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 때가 어느 때인데 그때랑 비교하나. 그런다고 그게 정당화되느냐”고 말했다. 송 차관이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2014년 10월 유진룡 전 장관이 경질되고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 사표를 냈다. 송 차관은 “기조실장 부임 직후 동료들이 줄줄이 찍혀 나갈 때 ‘진짜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30년 공직에 있으면서 이런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장혁·유길용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임장혁.유길용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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