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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샹젤리제 테러, ‘프랑스판 총풍’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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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송호진 기자의 프랑스 대선 현장르포]

샹젤리제 테러, 대선 막판 변수로 급부상

결선 진출 유력 극우 르펜에 힘 실어줄듯

르펜 “이슬람테러에 맞설 강력수단 필요”

IS “파리 총격 용의자는 우리 조직원”

공포감 올리려고 시간·장소 선택한듯



21일 아침(현지시각) 개선문으로 향하는 프랑스 파리의 왕복 8차선 샹젤리제 대로의 교통 차단은 풀렸다. 전날 밤 테러범과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이곳은 다시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경찰은 대통령이 있는 엘리제궁으로 가는 길목의 일부 교통 통제는 풀지 않았다. 총격전은 곧 새 대통령을 맞이할 엘리제궁에서 불과 500~600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파리 시민 파스칼(52)은 “테러범이 1명이고 바로 사살돼 큰 두려움은 없지만 테러 공격이 프랑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해진 건 사실”이라며 걱정했다.

오는 23일 대선 1차 투표를 사흘 앞두고 파리의 중심가이자 관광 명소인 샹젤리제거리에서 발생한 총격 테러로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가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프랑스 정부는 대선을 겨냥한 테러에 대비해 번화가와 주요 명소에 경찰 병력을 대규모로 배치했지만 불상사를 막지 못했다. 프랑스는 2015년 대형 테러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경계 태세를 이어 왔다.

총격범은 전날 밤 9시께 개선문과 가까운 샹젤리제 도로변에 차를 세운 뒤 자동소총으로 경찰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경찰 1명이 숨졌고 다른 경찰 2명도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총격 직후 자신들의 선전매체 <아마크>를 통해 총격범은 아부 유시프라는 이름의 벨기에 국적 남성으로 자신들의 조직원이라고 밝혔다. 이슬람국가가 테러 발생 직후 용의자 신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즉각 주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프랑스 당국도 범인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공개를 미루고 있다.

이번 총격은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총격범은 엘리제궁과 가까운 파리 최고 중심가라는 위치뿐 아니라 시민들의 시선이 쏠린 대선 마지막 방송토론이 한창 진행되던 시간을 택했다.

대선 후보 11명은 총격이 발생하기 1시간 전인 20일 저녁 8시부터 공영방송 에서 1차 투표를 앞둔 마지막 3차 방송토론에 임했다. 토론은 2차 때의 스탠딩 난상토론 대신 남녀 진행자 2명 앞에 후보 11명이 15분씩 돌아가며 앉아 질문을 받는 면접 형태로 진행됐다. 인터뷰 직후에는 11명을 무대로 불러 2분30초씩 추가 발언 기회를 줬다. 여론조사 지지율과 상관없이 후보 모두에게 인터뷰 기회를 준 3차 방송토론은 4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35% 안팎으로 알려진 부동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후보들에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현재 여론조사 판세를 보면,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중도를 표방한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양강이고, 급진 좌파 장뤼크 멜랑숑과 보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 3~4위권에서 추격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15분 면접에서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가’란 공통 질문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가져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연소득 40만유로(약 4억8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90%의 세금을 매기겠다는 공약을 내건 급진 좌파 멜랑숑은 자명종을 갖고 나왔다. 그는 “원자력과 군주주의적인 대통령 권위에서 벗어날 시간이라는 의미, 그리고 국민에게 행복한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 시계를 엘리제궁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40만유로 이상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90% 소득세율을 반드시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반유럽연합과 반이슬람 내세운 르펜은 열쇠를 갖고 나왔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국 우선주의’의 프랑스로 향하는 열쇠를 돌려준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그는 공약인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 제한을 거듭 상기시키며 “이런 결단에 두려움도 죄책감도 갖지 말자. 프랑스의 국민주권, 경제, 통화를 회복해야 한다. (유럽연합을 탈퇴해) 우리만의 통화를 얻는 데 막대한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운동 막판에 발생한 이번 사건이 ‘프랑스판 총풍’을 일으킬지도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높은 실업률과 침체된 경제 회복 문제가 주요 이슈였지만 테러와 안전 문제가 더 큰 주제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자 제한이나 반이슬람주의를 내걸고 선두를 달리는 르펜에게 다소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르펜이 결선행 티켓을 쥐더라도 시민들이 최종적으로는 극단주의를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안전 희구 심리가 확산되면 이런 전망이 들어맞을 확률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르펜과 여론조사 1위를 다투는 중도 후보 마크롱은 이날 15분 면접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로 가져갈 물건을 따로 내놓지 않은 채 경찰관의 죽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가’란 첫 질문에 “대통령의 첫 임무는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 르펜과 보수 피용에게 ‘안전 문제’를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총격 이후 르펜과 피용은 21일 유세를 일부 중단했다. 르펜은 “이슬람 테러란 거대 위협에 맞서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며 반이슬람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파리/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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