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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특전사 병력이 출동하면 조류인플루엔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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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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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뒤집어보기-106] 지난해 12월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는 그 규모와 전염성에서 사상 최악이라는 표현이 모자라지 않았다. 고병원성 H5N6형과 H5N8형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창궐한 데다 전북 김제, 충북 음성 등 산란계 농장 밀집지역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3154만마리의 닭과 332만마리의 오리가 감염됐거나 감염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살처분됐다. 국내 전체 닭의 20.3%와 오리의 37.9%가 땅에 묻힌 것이다. 특히 산란계는 밀집형 공장식 사육으로 전염 속도가 빨랐던 탓에 이번 사태로 전체의 36%가 살처분됐다.

이번 AI는 소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생 초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친 데다 방역 매뉴얼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AI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방역당국이 살처분을 결정하면 24시간 내에 해당 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AI가 발생했을 때 24시간 내에 살처분을 완료한 곳은 거의 없다. 일부 농장은 살처분을 완료하는 데 5일 넘게 걸리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살처분을 하려면 용역업체를 통해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고 농장 주변에 매몰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둘 다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처분 인력은 인건비 등의 이유로 주로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된다. 채용에 걸리는 시간과 이들을 교육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24시간은 불가능한 수치다.

농식품부는 지난 13일 6개 분야, 53개 과제에 걸친 AI 방역 개선대책을 발표하면서 AI 발생 초기 살처분에 특전사 부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사태 발생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데다 평소 교육·훈련에도 용이한 이유에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 군대를 가축 방역에 동원하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는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이번 AI 사태에서는 살처분을 제때 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었다"며 "시·군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 초기와 긴급 상황엔 군부대를 투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근본적인 예방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 농식품부는 지자체에 '사육제한명령권'을 부여해 위험 농장과 지역의 사육을 임의로 막고, 철새도래지 인근의 가금 사육업 허가·등록을 제한해 AI 취약 지역에서의 발생을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제대로 시행되더라도 효과가 작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는 당초 정부가 농장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사육을 쉬도록 하는 휴지기제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와 정책 형평성 등을 이유로 지자체 권한인 사육제한명령권으로 바꿨다. 책임을 지자체에 미룬 셈이다. AI의 피해가 큰 밀집지역의 농장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같은 유형의 AI가 발생한 일본은 양계장이 분산돼 있어 피해가 크지 않았다.

모 교수는 "농장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은 사료 공급·유통 편의성 때문인데 이를 개선하지 않고 이전보조금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인접 철새도래지도 물리적으로 떨어뜨리기보다는 농장의 차단과 방역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라고 말했다.

정책 실패의 결과는 소비자와 농가의 몫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9일 기준 계란 한 판의 평균 소매가(중품 특란 기준)는 7696원이다. 지난해 4월 평균 가격인 5350원에 비해 44%나 비싸다. AI로 전국 산란계의 3분의 1이 사라진 데다 미국·유럽도 AI가 발생하면서 산란계 수입도 요원한 상태다. 지금부터 병아리를 키운다고 해도 산란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8~9개월이 걸린다.

정부와 방역당국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1만원짜리 계란 한 판은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석민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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