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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아트 오브 워]참수작전과 차도살인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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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전쟁에서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인다는 것은 승리를 의미해 왔다. 전쟁이 벌어지면 적장을 죽이기 위해 온갖 계책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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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수중시험발사 후 잠수함 위에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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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해 요새 ‘참수작전’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원래 적의 핵전쟁 지휘부를 선제타격해 핵전쟁을 차단하는 작전을 의미하던 참수공격(Decapitation strike)이란 용어가 이제는 적의 핵심 수뇌를 제거하는 작전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2011년 5월 1일, 빈 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국 특수부대 데브그루 대원들에게 사살된 것이 대표적인 참수작전이다. 무암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등도 미군 참수작전의 희생자들이다.

한반도에서도 참수작전이 이제는 마치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 한미 키리졸브·독수리훈련과 관련해 특히 심하게 반발하는 핵심도 ‘참수작전’이다. 한미 연합군의 참수작전 표적은 북의 ‘최고존엄’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니 그럴만 하다.

국내에 참수작전이 본격 소개된 것은 2000년대 말부터였다. 이후 2015년 8월의 한 학술 세미나에서는 국방부 근무 장성이 대북 비대칭전략으로 심리전, 정보 우위, 정밀타격능력 등과 함께 참수작전을 거론하기도 했다.

한미연합군이 김정은 위원장을 표적으로 참수작전을 실행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김 위원장의 집무실을 포함한 거처를 공중에서의 B-2B·B-2 전략폭격기나 F-22·F-35 스텔스기, 바다에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등으로 선제 타격하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특전사와 미 육군 델타포스, 해군 네이비 실 6팀(데브그루), 75 레인저 특공연대, 그린베레 등 특수부대원들이 적진에 침투해 김 위원장을 제거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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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특수전단 요원들이 적진 침투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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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사시 지하 벙커나 비밀 은신처에 몸을 숨긴 김 위원장의 거처를 찾아 정밀 폭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수부대가 북한 지역에 들어가 참수작전을 수행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손자병법 시계편을 보면 기습공격과 관련해 ‘공기무비(攻其無備) 출기불의(出其不意)’, ‘차병가지승(此兵家之勝) 불가선전야(不可先傳也)’란 구절이 있다. “적이 준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전혀 생각지 못하였을 때 출격하라. 이것은 병가의 승리하는 원칙이다. 공격 전에 미리 적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고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하지만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손자병법처럼 북한의 최고 수뇌부를 겨냥해 기습 침투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얘기다. 전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대공망을 갖고 있는 평양에 항공기를 통해 특수부대원을 내려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호구’(호랑이 입)로 밀어 넣은 것과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말리아에서의 블랙호크 다운 보다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잠수함이나 특수함정을 통한 바다에서의 침투는 더 어렵다. 해안선에서 평양까지 가는 도중에 전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에서의 참수작전은 미군이 리비아와 이라크를 점령한 후 카다피와 후세인을 색출해 낸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참수작전을 언급하는 마당에 북한 역시 사생결단의 자세로 저항할거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미연합군도 이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 참수작전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김 위원장에 대한 심리적인 겁주기 성격이 강하다. 북한도 이에 맞서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는 말싸움을 걸고 있다.

차라리 김 위원장을 제거하는 데는 무경십서(武經十書·Ten Military Classics)에 등장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적격이다. 차도살인지계는 말 그대로 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적을 죽이게 하는 방책인 것이다.

(무경십서는 중국의 고대 병법서 열 권을 일컫는 것으로 제36계 ‘주위상’(走爲上)이 유명하다. 이는 ‘일단 달아났다가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으로 흔히 ‘36계 줄행랑’이라고도 한다. 차도살인지계는 제3계에 해당한다.)

북한 사회가 겹겹히 감시의 눈초리가 작동하는 폐쇄사회라고는 하지만 김 위원장의 측근이나 군부를 이용해 그를 제거하는 게 참수작전보다 확률로는 더 현실적이다.

차도살인 계략의 특징은 적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데 절묘함이 있다. 감쪽같이 실행되기에 알고 나면 이미 늦다. 김 위원장을 목표로 참수작전을 앞세우고 뒤로는 차도살인지계를 도모하는 성동격서식 공작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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