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발자취] 眞理 찾아 헤맸던 '지성의 참모총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인·철학자 박이문 교수, 문사철 넘나들며 책 100여 권 내

52세에 늦은 결혼, 35년간 해로

'지성의 참모총장'을 꿈꾸던 시인·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87·사진)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26일 밤 10시쯤 세상을 떠났다. 뇌경색 이후 2015년 6월부터 입원해 있던 일산의 한 요양병원에서였다. 특별히 유언은 없었다. 말하기 어려운 상태가 오래됐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조선일보

진리를 향한 전방위적 탐구가 그의 학문 세계를 요약한다.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박 교수는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시인 말라르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미국 USC에서 철학자 메를로 퐁티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보장된 자리를 포기하고 새로운 진리를 찾아 주유한 학자이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써서 화제가 됐던 서울대 불문과 석사 학위 논문 이후 이화여대 전임교수로 발탁됐지만 곧 자리를 포기하고 소르본으로 떠났고, 이후에도 하나의 철학 사조나 지적 유행에 만족하지 않고 학문적 여정을 계속했다.

발레리·사르트르·지드·브르통·말로·카뮈·데리다·노자·장자 등 문학과 철학을 가리지 않는 맹렬한 독서와 연구로 100여 권의 책을 남겼고, 서울대·포항공대·이화여대·미국 시먼스대 등에서 가르쳤다. 지난해에는 미다스 출판사에서 '박이문 인문학 전집'(전 10권)을 펴내기도 했다. 초판인 양장본 1000질이 모두 나가 추가로 보급판을 찍었다. 박이문 평전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를 쓴 사회학자 정수복(62)은 "철학자 박이문은 인간·사회·자연·우주의 존재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하여 100여 권의 저서로 남긴 현대 지성사의 큰 별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학문에서는 늘 한발 앞서는 한국 지성사의 큰 별이었지만, 삶에서는 한발 느린 '늦깎이 신랑'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나이 쉰둘이던 1982년 부인 유영숙씨와 만나 결혼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부인인 한지현 광운대 명예교수가 경기여고 동기동창이던 유씨를 소개했고 두 사람이 결혼하자 "박 교수님이 처음으로 인생에 '참여'하시는군요"라고 농담 겸 덕담을 했다고 한다. 부인 유씨는 노인 요양등급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면서도, 매주 2회 요양원을 찾아 볼을 비비고 직접 간식을 먹이며 남편을 간병했다.

유족은 부인과 미국 IT업계에서 근무하는 아들 장욱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9일 6시 20분. (02)2227-7594.

[어수웅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