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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허진석의 책과 저자]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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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삼중당문고 세대의 독서문화사’라는 부제가 눈에 쏙 들어왔다. 순간 부드럽고 탐스런 거품으로 가득한 욕조가 떠올랐다. 기획, 제작, 마감, 취재 같은 일들에 치어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담가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다. 삼중당문고는 나에게 첫사랑이었고, 첫사랑을 돌이키게 하는 소품인 동시에 사는 방식을 결정하도록 재촉한 경적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니 삼중당문고라는 제목을 보고 어떻게 박숙자의 책을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1976년 여름에 삼중당문고에서 낸 책을 처음 샀다. 이광수가 쓴 <무정>. 서울 면목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 겸 책방, 나무로 짠 책꽂이의 중간쯤에 상하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때 국어선생님을 병적으로 사랑했다. 이 사랑은 불에 덴 자리처럼 나의 삶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았다. 내 기억과 사고의 범위를 초월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분이 나온 대학을 졸업했고, 그분이 권한 대로(나는 예언이라고 믿었다) ‘산문을 쓰는 직업’으로 평생 살아왔다. 그 길이 꼭 기자일 필요는 없었는데…. 선생님에게 제출할 독후감을 쓰기 위해 <무정>을 읽었다. 물론 숙제는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2017년 3월 25일과 26일을 이 책에 바쳤다. 누군가 “그 책은 네가 상상하는 그런 책이 아니야!”하고 충고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지막 쪽까지 읽은 다음, 나는 완전히 지쳤을 뿐 아니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리요. 삼중당문고에 정신을 빼앗길 일이 아니었다. 책 표지 오른편에 두 줄 세로쓰기로 인쇄한 제목을 신중하게 살폈다면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으리라. 디자이너는 힘 있게 눌린 활자의 모서리 곳곳을 떼어낸 듯 지워 분명히 경고를 하지 않았는가.

푸른역사가 내놓는 보도자료들은 아주 훌륭하다. 기자들이 스윽 긁어다가 마치 제 글인 양 격식 있는 책 소개 글을 만들거나 이리저리 손을 더해 거창하게 서평으로 가공해도 좋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보도자료를 비교적 열심히 읽는다. 보도자료는 출판사에서 ‘이렇게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보내는 글이니 적극적으로 베껴 써도 결코 표절이 되지는 않는다. 이번 보도자료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책 읽기란 탐침으로 꿰뚫은 한국 현대사’.

출판사의 보도자료에 등장하는 ‘시대를 읽는 문화적 탐침’ 네 사람은 준, 정우, 혜린, 태일이다. 준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이명준이자 <회색인>의 독고준이다. 정우는 김승옥의 <환상수첩>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전혜린은 독일 뮌헨에서 유학한 번역가, 태일은 노동청년 전태일이다. 저자는 이들을 가리켜 “제몫을 가지지 못한 벌거벗은 자들이었으나, 그럼에도 국가와 난민, 혁명과 언어, 여성과 번역(반역), 노동과 인간이 무엇인지 상상했고, 그 상상이 지금 현재의 삶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역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라는 저자의 통찰은 핵심을 찔러 우리 마음 한가운데 찌르는 듯한 통증을 심어 놓는다. 이 통증은 결국 나로 하여금 삼중당문고라는 잠재의식을 버리고 이 책의 행선지를 향하여 되짚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아니, 의무를 지운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스테디셀러를 쓴 전혜린과 인간답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스러진 전태일… 이들이 읽고 던진 물음으로 우리 삶의 지도가 단단해졌다. 우리 역사는 그 청년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담아냈다.”

나는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를 비교적 빨리 읽었다. 책의 폭과 깊이에 비하면 그랬다는 뜻이다. 천천히 씹어 읽어야 할 책임에 분명하지만 약간 행운(?)이 따랐다. 우선 저자가 제시하는 레퍼런스 대부분이 나에게 익숙했다. 한 번 이상 읽어 보았거나, 소장을 했거나 최소한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책 또는 자료였다. 그러니 ‘주석’과 ‘찾아보기’를 뒤적거리는 시간이 다른 독자에 비해 적게 필요했을 것이다. 거기다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적어도 수용자로서 그의 글을 대하는 나에게 적합한 편이어서 재빨리 읽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책을 덮은 다음 책으로 인해 다친 마음 여기저기를 핥으며 저자의 몇몇 문장들을 곱씹어 보았다.

박숙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내 입장에서 곤란한 점은 그의 강렬하고도 스피디한 문장이 독서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글은 뭔가를 듣고 놀란 다음 생각해보고 삭일, 그런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앞장서서 걸으며 길을 트는 탐험대장처럼 결연하고도 단호하게 광복 이후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스런 시간의 숲을 주파해버린다. 물론 감사하게도 한 주제를 시작하는 도입부에 예문을 제시해서 읽힌 다음 이어지는 단락에서 그 부분을 ‘복습’해주는 친절을 베풀기는 한다. 그러나 저자의 발견과 통찰은 대개 한 주제가 석양처럼 저물어가는 부분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 부분에서 저자는 곧잘 문학적 끝내기, 때로는 잠언을 연상시키는 심연의 언어로 말한다.

또한 저자는 탁월한 작가로서 성실하기 그지없다. 166쪽과 182쪽이 증거이다. 더 결정적인 곳은 204쪽. 전혜린이 문장에서 독일어 병기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통찰한 저자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길게 예문을 풀어 주며 다시 전혜린 식으로 독일어 병기를 해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쥐 덕분에 카뮈의 <페스트>가 자주 언급되었다’거나 ‘역사상 쥐의 위상이 가장 높아진 시기였다’는 대목에서는 일류 작가의 골계가 보인다. ‘주머니에 딱히 넣을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머니가 없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는 이상의 소설 첫 문장을 슬쩍 변주하지 않는가.

■사족 : 책을 읽다가 가끔 행간에 머무르며 딴생각을 했다. 그래서 종이를 꺼내 몇 자 적기도 했다. 1) 불란서 시 ‘시몬 너는 아느냐’는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 그러니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에 등장하는 싯귀(Simone, aimes-tu le bruit des pas sur les feuilles mortes?)와 같은가? 이 구절을 ‘시몬 너는 아느냐’로 번역한 시집이 제법 있다. 2) 142쪽에 마침표 하나가 빠졌고, 250쪽에 실린 미주 46번에는 아마도 ‘중심’이어야 할 낱말이 ‘줌심’으로 인쇄되었다. 3) 211쪽에 나오는 ‘쉬프트 운트 드럼’은 ‘슈투름 운트 드랑 (Sturm und Drang)’을 말하는가? 4) 253쪽에 나오는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와는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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