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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문재인 한·미 FTA 재협상 근거로 든 ‘독소조항’, 노무현 정부 때 이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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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일 양일간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8~9차 합동 토론회의 쟁점 중 하나는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달라졌느냐’는 것이었다.

포문은 안희정 후보가 열었다. 2011년 말 한·미 FTA 비준동의안 국회 통과를 전후해 재협상에 반대했던 안 후보가 당시 재협상을 요구했던 문 후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며 각을 세웠다. “결론이 난 것을 야당이 됐다고 뒤집고 다시 독소조항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꾼 것이라는 비판이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 때 대두됐던 독소조항에 대해 국민들이 재협상을 요구했다”며 “재협상을 요구한 것을 참여정부의 한·미 FTA 체결에 대해 부정·반대했다고 단정짓는 건 무리”라고 방어했다. 그러면서 “한·미 FTA는 제가 있던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것이고, 그에 대해서는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공약집에 담긴 한·미 FTA 재협상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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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논쟁 구도에선 당시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의 독소조항으로 꼽은 내용이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FTA에 이미 있었는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거쳐 체결한 FTA에 추가로 들어갔는지에 대한 부분을 확인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소조항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체결한 한·미 FTA에 대부분 포함돼 있었다. 독소조항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은 협정 체결 당시부터 나왔던 것으로, 이명박 정부 때 새롭게 나온 것도 아니었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한·미 FTA는 총 2차례 재협상을 거쳤다. 1차 타결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월2일 이뤄졌다. 이후 미국은 ‘신통상정책’을 근거로 노동·환경 분야 재협상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수용해 재협상을 했고, 그해 6월30일 2차 타결이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 6월 한·미 FTA를 새롭게 논의하자고 했고, 그해 12월 3차 타결이 이뤄졌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였고,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에 양보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여당인 한나라당이 2011년 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하자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한·미 FTA에 독소조항이 있다”며 재재협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당시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이 꼽은 독소조항은 투자자-국가 간 중재(ISD), 네거티브 리스트, 역진방지(래칫) 조항,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보호조치 미흡, 자동차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10개 항목이었다. 이 중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항을 제외한 9개 항목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담긴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 당시엔 독소조항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안 후보의 경우 한·미 FTA가 정부의 정책 재량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 일관됐다는 점만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추진 중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상생법)’이 한·미 FTA 위반 등 통상 마찰 문제에 직면해 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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