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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세월호 인양] 故 남윤철 교사 유족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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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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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3년 만에 반잠수선에 얹혀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세월호의 선체에 남아 있던 해수를 배출하는 등 후속작업이 계속된 26일 청주시 천주교 성요셉 공원에 잠들어 있는 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묘비가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듯 봄비에 젖어있다. /김용수
[중부매일 송휘헌 기자] "이제 3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이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잊혀 지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세월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아직도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만 납니다."

26일 세월호 선체전체가 해수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언론으로 접한 故 남윤철(단원고 교사ㆍ당시 35) 교사의 아버지 전 충청대 남수현 교수는 인터뷰에서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청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교단에 선 故 남윤철 교사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었다.

남 교수는 "끝까지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목숨을 잃은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아들의 그런 마음 때문에 슬퍼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창기에 많은 혜택이 있는 의사자 지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남 교사의 가족은 의사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는 "찾지 못한 학생들도 많은데 의사자 신청을 하는 것은 아들의 뜻을 반하는 것 같다"며 "학생, 교사, 유가족들과 뜻을 같이 할 것이며 앞으로도 의사자 신청 등의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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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뒤 남 교수 가족은 3년의 시간동안 익숙해졌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또 미수습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생각에 무거운 짐을 안고 있었다. 특히 남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2학년 6반 학생 2명에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남 교수는 "세월호의 인양작업, 이동경로 등 진행되는 상황을 언론을 통해 계속 확인은 하지만 오래보진 못한다"며 "많은 언론에서 배가 뒤집혀져 침몰하는 모습을 다루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경각심이 들겠지만 유가족들에게는 마음이 미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항상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마음에 짐이 있다"며 "아들이 담임을 맡았던 2학년 6학 학생들 2명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세월호의 모습을 보면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하루 빨리 미수습자들을 찾고 가족들의 품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였다.

남 교수는 "앞으로 어떻게 진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색을 진행하면서 미수습자들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며 "미수습자 모두가 이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故 남윤철 교사는 신흥고 출신으로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자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비상구 근처에서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일일이 챙겨주고, 끝까지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가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2014년 4월 20일 상당구 가덕면 천주교 성요셉 공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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