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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설]‘5·18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이순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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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어제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씨는 720쪽 자서전 중 20쪽에 걸쳐 12·12와 5·18 당시 전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증언했다. 이씨는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최규하 전 대통령이 퇴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 줄 것을 간곡하게 권유했다”고 서술했다. 최 전 대통령의 후계자 선택과 권력 승계가 “참으로 명예롭고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썼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술은 차마 말로 옮기기조차 민망하다. 그는 “어찌된 셈인지 광주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편을 악몽처럼 따라다녔다”거나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양민학살자라는 누명”이라고 기술했다. 1996년 재판 당시 한 스님에게 5·18 희생자의 영가천도 기도를 올려달라고 하면서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이지만”이라고 말한 대목도 있다.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위압적인 태도에 공포를 느껴 그만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18년 동안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시해된 후 민주화 과정을 밟아가는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무명의 군인을 스스로 기꺼이 대통령에 추대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전 언론사를 윽박질러 시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구국의 지도자로 조작한 사실과도 배치된다. 자신들도 5·18의 희생자라고 지칭한 대목은 희생자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천인공노할 망언이다. 조작으로 드러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한 기술은 아예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진행되는 와중에 전직 대통령 부인이 회고록을 발간한 저의도 의심스럽다. 5·18을 폄훼하는 극우세력의 목소리에 편승해 자신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 보겠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다음달 초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자서전을 낸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안 봐도 뻔하다. 최종 발포 명령자 등 5·18에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허위 증언으로 5·18 희생자들을 모독하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이 듣고 싶은 것은 자기 도취에 빠진 부부의 거짓말이 아니라 진솔한 참회와 진실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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