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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목멱 칼럼]'인공지능(AI) 판사'를 '인간 판사'가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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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남영찬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 변호사]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기사(碁師) 알파고의 대결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비롯된 AI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인간 대표선수 이세돌 9단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신의 한수를 찾아내 이겼다는 한판도 알파고가 일부러 져 준 동정패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쇼크였다. 인간의 고뇌와 집념, 열정을 보여준 아름다운 패배였다는 위안은 그 쇼크를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쇼크 뒤에는 AI의 미래상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AI에 대한 관심은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 중에는 ‘AI 판사’ ‘AI 변호사’가 인간 법조인을 대체할 것인가 하는 흥미로운 문제도 있다. 대체가 가능하다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인간 법조인은 대량 실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변호사의 일부 영역은 이미 AI가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해 5월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가 미국로펌 베이커 앤드 호스테틀러에 채용되어 파산 전문 변호사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IBM 인공지능 왓슨과 연계된 로스는 1초에 80조번 연산을 하고 책 100만 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자체 심층학습을 한다고 알려졌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런던대 등이 유럽인권재판소의 인권침해 사건 584건에 관한 실제 기록과 증거를 토대로 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개발한 인공지능 판사는 유럽인권재판소의 실제 판단과 79% 일치하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 판단은 법적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도덕적 상황까지 고려된 것이라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대법원은 지난 해 10월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사법부의 미래를 전망하는 ‘2016 국제법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AI가 변호사 업무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판사의 업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되지 않는다고 예측하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는 대체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AI가 사회적 공감?합의를 바탕으로 한 판결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거나, 인간의 생사를 최종 결정하는 문제는 인간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기업법무협회는 최근 ‘제4차 산업혁명과 법률가의 역할 및 도전’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지, AI에게 권리 능력을 인정할 수 있을지가 논의 주제였다. AI에게 권리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법적으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법적으로 사람(人)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태어나면서 사람인 자연인(自然人)과 법이 만든 사람 즉 법인(法人)이 그것이다. AI 판사는 자연인도 법인도 아니다. AI 판사가 권리능력을 부여받으면 법상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 만들어질 것이다.

재판의 현실을 본다. 법원 전체가 사건의 홍수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무언가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된 것이 상고법원 도입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와중에 대부분의 판사들은 사력을 다하여 AI 판사에 대체되지 않을 재판을 해오고 있다. 알비삭스가 말한대로 판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야기꾼이다. 한 판사의 경험과 경험에 기초한 양심, 헌법적 가치에 바탕을 둔 검증과 추론, 관점의 수정은 판결문이라는 이야기 이면에 숨겨져 있다. 그 이면의 즐거운 고통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입증책임과 양형기준에 기댄 안이한 재판, 사회적 공감과 합의에 부합되는지 의문인 재판, 공정성에 의심이 드는 재판 등도 발견이 된다. 이면의 고통, 지적인 겸손함과 따뜻함 등이 결여된 재판들이다. 이런 재판이 양산되면 재판의 수요자들은 인간 판사 대신 AI 판사를 찾게될 것이다.

인간 판사가 AI 판사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사람됨에 기반한 재판이어야 한다. 소통, 공감, 사회적 합의, 지적인 겸손함 등이 사람됨의 속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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