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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태평로] 사교육 줄이는 X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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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꿈·기억·감정을 측정해 저장·제거할 수 있을까? 방파제를 이용해 파도의 역학 에너지를 고효율 에너지로 바꿀 수 있을까?

미래창조과학부가 'X프로젝트' 연구 과제로 선정한 것 중 일부다. X프로젝트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질문'이라는 구호 아래, 꼭 해결이 필요한 과제를 'X질문'으로 선정하고 이를 연구하려는 팀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구글X'를 모델로 했다.

미래부는 2015년 질문 50가지를 선정했고, 검토 과정을 거쳐 16과제로 압축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는지 연구를 맡겼다. 지난해엔 '과학기술을 활용해 국가 청렴도를 높일 수 있을까?' 등 새로운 X질문도 54건 선정해 압축 절차를 밟고 있다.

2015년 9월 처음 X질문 50건을 선정했을 때 '사교육 없이도 만족스러운 공교육이 이루어지려면?'이라는 질문도 들어 있었다. 이 주제의 제안 설명에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의 일과를 보면 꽤나 충격적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직행해 밤에야 집에 갑니다. 집에 가면 일과가 끝나나요? 아닙니다. (중략)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은 점점 증가해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사교육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과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 또한 같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까요?"

천재적 학자가 등장해 이 문제를 해결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주제는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 연구자 공모에서 연구 제안서가 9건 들어오긴 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사교육에 국민 관심이 많아 연구 과제로 선정했지만, 기대와 달리 사교육 문제에 과학적 해결책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 국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나도 처음에 연구 제안을 해볼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광범위하고 어려운 문제라 포기했다. 많은 연구자가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교육을 없애거나 줄이는 문제는 X프로젝트 연구 과제에서 빼는 것처럼 쉽게 포기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600만 초중고 학생이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 제도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있었다. 요즘엔 미래 전문가들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책 속의 단순 지식 암기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그런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다행히 대선 후보들이 상당히 포괄적인 교육 공약을 내놓고 있다. 각 후보 진영에서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정책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일방적 교육 공약으로는 난마처럼 얽힌 지금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런 방식으로는 정당성을 갖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이 나올 수 없다. 후보들은 교육 공약을 당선 이후 시행할 정책이 아니라 검토할 여러 방안 중 하나라고 여겨야 한다. 그래서 대선이 끝나는 대로 여야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교육개혁위원회 같은 범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교육 X질문'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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