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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테러현장 르포] 500m 광란 질주에 런던시민들 "저항…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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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전면통제된 의사당 부근 '텅빈 도심'…공포와 긴장 감돌아

런던시민들 "굴복하지 않는다…우리는 함께 있다" 의지 다져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영국 런던 도심 의사당 부근에서 차량·흉기 테러를 당한 영국민들은 '영국의 가치'가 공격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용의자가 영국 민주주의 심장인 의사당 옆 웨스트민스터 다리 남단에서 북단까지 약 500m를 광란의 질주를 벌인데 이어 흉기를 휘두르면서 의사당에 침입하려다 앗아간 3명의 목숨과 40명의 부상 그 이상의 것을 노렸다고 영국민들은 보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2일(현지시간) 저녁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비장한 어조로 "내일 아침 런던시민들은 이 거리를 걸을 것이고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오전 의사당 부근은 모든 도로가 폐쇄된 채 짙은 적막감에 묻혔다. 상공에 떠 있는 헬리콥터에서 들려오는 '두두두' 소리는 거리의 적막감에 긴장감을 더했다.

평소 인파로 붐비던 모습과 지극히 대조되는 이런 적막한 모습은 런던이 테러 공포에 짓눌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인근 채링크로스에서 만난 폴(41)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모습"이라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영국은 1998년 북아일랜드평화협정 체결 이전까지 40년간 크고 작은 테러와 공격을 경험했고, 이를 겪은 세대들에겐 테러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어느 정도 새겨져 있다고 했다.

영국을 흔히 '불도그'라고 말하곤 하는데 원래 강한 사냥개였던 블도그처럼 강인한 마음을 가진 데서 비롯된 것 같다면서 지인들과 대화에서 '저항하다'(defiant)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파리 바타클랑 총격 테러와 니스 트럭 테러를 당한 뒤 '톨레랑스'(인내)를 외쳤던 것과 달리 영국민들은 이번 테러에 '저항'을 얘기하고 있다. 수많은 파리시민들이 바타클랑 극장 인근 경찰 통제선 밖을 찾아와 꽃들을 놓으면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모습도 런던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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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 부근에서 만난 40대 라이언 씨는 "윈스턴 처칠이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저항할 것"이라며 했다.

전날 테러가 발생했음에도 비상시 주요 건물들에 발동되는 건물폐쇄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건물폐쇄 결정이 내려지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리 정해진 특정 장소로 대피해야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것도 저항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지난 2005년 7월 52명을 숨지게 한 런던 7·7 지하철 자살폭탄테러 직후 텅빈 런던 지하철은 며칠 만에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바 있음을 런던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테러를 지켜본 영국민들은 충격, 공포, 슬픔 등의 감정 반대편에서 저항과 더불어 '자랑스러움'도 느끼는 듯 했다.

보수당 하원의원인 토비아스 엘우드 외무차관이 테러범이 휘두른 칼에 찔려 쓰러진 경찰관에게 달려가 얼굴에 피를 묻힌 채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하는 모습과 응급구조대와 경찰들이 부상자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이 임무를 신속하고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 것이다.

동시에 이번 테러는 '함께'(together)하고 있다는 결속감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런던시민 셜록은 "공무원들과 시민들이 다친 사람을 돕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시민 테텐스도 트위터에 "어제 악마가 한 명 있었지만, 친절과 영웅적 행동을 한 수천명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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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우리 이전 세대들이 했던 것처럼, 미래 세대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고, 우리는 오늘 테러를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의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만났다"며 저항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전파했다.

이제 런던시민들이 화답할 시간이 다가왔다.

'7·7 지하철 폭탄테러' 때 보여줬던 저항과 용기가 이번에도 되살아날지, 아니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으로 그 일단을 드러낸 '다문화 영국'의 균열이 극단주의와 연관된 이번 테러로 더욱 커질지 세계인들은 주목하게 될 것이다.

500m 광란의 질주의 현장이었던 웨스트민스터 다리는 이날 오후에 통제가 풀려 다시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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