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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개념없는 정치언어에 놀아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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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개념’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변화를 향한 소수자의 정치전략
박이대승 지음/오월의봄·1만6000원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2013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으로 당선된 지 4년 만이다. 시간차만 있을 뿐 박근혜는 동일인물이다. 촛불혁명이라고들 하지만 그를 뽑은 것도, 그를 파면에 이르게 한 것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개념’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지은이 박이대승은 박근혜도, 유권자도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개념이란 ‘분명하게 정의되어 사회적 표준으로 쓰일 수 있는 용어’다. 이는 기호와 의미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성향이 있다. 대척적인 것이 ‘정치언어’인데, 의미가 수시로 바뀌는 말로, 특정 집단이 특정 목적에 따라 기존의 기호에 의미를 덧붙여 끊임없이 변형시킨다.

박근혜는 은둔형에다 의사소통 능력이 모자란다. 보좌진이 써준 글을 읽을 때와 달리 그의 입말을 들으면 횡설수설이다. 뜻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남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기호를 실행력 있는 의미로 변환하여 국정에 반영해야 하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으로는 젬병이다. 그가 집권을 위해 내건 모토는 ‘국민행복’, ‘창조경제’, ‘경제 민주화’. 지시하는 바가 불분명하지만 그럴듯한 ‘껍데기 말’ 즉 정치언어다. 경제민주화가 슬그머니 빠진 것도 그런 탓이다.

유권자도 박근혜와 도긴개긴이다. ‘부모를 잃고 궁에서 나온 비련의 공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의 딸’이란 미신에 현혹돼 표를 몰아주었다. 미신에 눈멀었으니 박근혜가 내세운 정치언어의 정체는 알 바 아니다. 선거철에만 반짝 의미부여 받기는 하나 국민으로서 책임을 방기한 셈이다. 지은이 논리를 따라가면 ‘국민의 현명함’은 무슨, 개뿔이다. 진짜 무엇이 문제인 줄 모르고 그를 찍은 손목을 자르고 싶어 하는 우중일 뿐이다.

정치와 유권자를 매개해야 할 언론도 그렇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쓰는 정치언어의 속내를 파헤치지 못했을 뿐더러 박근혜 파면의 과정을 또 다른 정치용어 ‘촛불혁명’으로 대체했다. ‘촛불+혁명’의 조합으로써 촛불 이미지를 덧붙여 혁명의 뜻을 어지럽혔다. 그럼으로써 대통령 박근혜와 유권자, 모두 개념 없었음을 은폐한다.

지은이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사회적 표준 개념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말을 바꾸면 국민이란 용어에 희석된 시민 개념의 회복이다. 시민이란 한국이 민주주의를 수용하며 느슨하게나마 소개되었지만 의미가 공유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개념이다. 시민의 원뜻은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스리면서 다스림을 받는 사람’.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평등한 기초 위에서 서로 협력하며 공동체의 정치적 삶에 참여한다. 시민의 지위는 공동체의 선을 누릴 평등한 권리들 및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평등한 의무들로 구성된다. 공동체의 선은 민주주의적 시민성 자체도 포함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멤버십, 권리, 참여다.

개념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한국 정치는 개념적 표준 없이 정치언어로 유지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예컨대 청년실업, 흙수저·금수저 따위.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용어를 활용한다. ‘저임금-불안정 노동-고시원 생활-학자금 대출-…’로 된 전형이다. 사회적 악조건 아래서 악조건이 중첩된 집단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15~29살 중 그런 계층이 있다면 그들의 정확한 이름은 ‘빈곤층’이나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이지 ‘청년’이 아니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치언어에 현혹되면 제2의 새누리당, 제2의 박근혜가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경고다. 개념이 분명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라는 권고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치언어를 구사하는 집단과 인물일수록 흡인력이 큰 점.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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