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yes+ 이 연극] 남자충동, 가족을 위한 충동적 행동이 파국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너가 나를 알면, 나를 좋아할 것인데…."

연극 '남자충동'(사진)을 보고 나오는 길. 동생 '달래'에게 주인공 '장정'이 스치듯 내뱉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말은 관객에게는 닿았으나 정작 동생에겐 닿지 못했다.

사실 극 안에서 그의 목소리, 진심이 어느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 또한 그 자신을 사로잡는 '남자다움'과 '가장'에 대한 책임감이 귀를 막아 그가 그렇게 지켜주고 싶었던 소중한 이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된다.

소통의 단절은 결국 파국을 부른다. 1997년 조광화 연출이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 연극이 여전히 동시대성을 갖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1990년대 목포, 쇠락해 가는 동네. 일본식 가옥에 들어앉은 가족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온전한 이가 하나도 없다.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이씨', 한때는 열정이 있었을지 알 수 없으나 승자독식의 사회 속에서 이미 패배자의 삶을 산 지 오래다. 그를 대신해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루종일 가게에서 뼈빠지게 고생하는 어머니 '박씨'는 집에 온 노름꾼들을 쫓아내려다 되레 남편에게 구타당하기 일쑤다. 노래를 좋아하는 여동생은 자폐를 앓고 있고, 클럽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남동생은 주인공의 눈으로 보기엔 사내답지 못하다.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를 동경해온 장정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 가운데 살았다. 그렇기에 머릿속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나의 꿈이여!"

사내로 태어났으니 '큰 뜻'을 품어야겠다는 꿈도 야무지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두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 장정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폭력'이다.

가족과 같은 조직의 동생을 폭행한 이웃 조직의 보스 '팔득'을 처단하겠다고 나선 장정. 하필 이때 아버지는 노름으로 집문서까지 은행에 넘기고, 어머니는 진저리 나는 삶을 떠나겠다고 선포한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붕괴에 처한 상황에서 장정이 가족을 다시 결합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방 한구석에 숨겨져 있던 일본도로 아버지의 양 손을 베는 것. 노름을 하던 손이 사라지면 다시 가족들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1차원적인 발상은 오히려 가족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그의 진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한 채 가족을 오히려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동인이 된다.

팔득에 대한 복수도 일단은 성공을 거두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의 안팎으로 새로운 적들을 만들게 되고 결국 복수의 칼끝이 장정을 향하게 된다.

극중 관객들을 바라보며 순간순간 내뱉는 장정의 속내는 가족에 대한 진한 애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가장 사랑했던 동생이 공포에 질려 휘두른 칼에 무너진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말하며 이승을 떠나는 장정의 뒷모습이 외롭다. 사내다움과 왜곡된 가부장제가 만든 판타지 속에서 장정을 비롯한 모두가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공연은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TOM 1관.

박지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