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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5060은 `지긋한 청년`…힘 빼고 권위 내려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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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생학교' 정광필 교장

매일경제

지난해 5월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배움터 '50+인생학교'가 문을 열었다. 은퇴 이후 삶을 위한 이 학교는 서울 대치동 유명 입시학원보다 더 빠르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개설 과목은 인생 재설계부터 인생 후반 커리어 모색까지 이른바 인생 2막 설계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입학을 위해선 나름의 심사도 거쳐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인생의 더할 것과 뺄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지원자의 신선함·다양성도 중요한 기준이다. 이 화제의 학교를 이끄는 사람은 바로 정광필 교장(60)이다.

정 교장은 서울대 철학과 학생 시절부터 노동운동으로 청춘을 보냈고, 이우학교 초대 교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50+인생학교'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끈 이유는 뭘까. 정 교장은 무엇보다 은퇴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꼽았다.

"은퇴를 맞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을 이끌어 온 주역입니다. 여전히 능력 있는 이들이지만 사회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데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죠.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목마름이 표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50+인생학교' 학생은 남자가 더 많다. 은퇴 후 두세 달 동안 '번뇌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발심(發心)에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다.

정 교장은 "'50+인생학교'에는 참여형 활동들이 많은데 은퇴 세대들이 그동안 이 열정들을 어떻게 참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매우 놀랐다"고 말한다. 체면 때문에 부엌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던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배우는 과정에도 줄을 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은퇴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그동안 누린 지위와 권위 내려놓기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또는 '내가 해 봐서'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서나 아내가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죠. 이런 의미에서 엑셀이나 요리를 배우는 것 같은 일들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로 했던 일들을 몸으로 배워야죠. 손발이 움직이는 순간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정 교장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50+ 세대뿐만 아니라 3040 젊은 세대들도 인생 후반부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전에는 은퇴하면 등산 등으로 소일했죠. 또 손자 재롱 보면서 인생을 마무리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에는 과거와는 다른 준비가 꼭 필요합니다."

정 교장은 인생 후반을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꼭 만들어 두라고 조언한다.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할 때만이 헛헛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50+인생학교'의 중요한 역할은 인생 후반을 위한 '전형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모델은 바로 의미 있는 경험을 나누고 함께하는 동료를 만드는 것이다. 이우학교 시절부터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는 그의 교육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점수 매기는 데 매우 냉정한 편이지만 지난 1년간 이끌어 온 '50+인생학교'에 점수를 준다면 90점을 주고 싶습니다. 참여자가 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고 그 에너지로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이들의 능력과 의지가 더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 부분이 또 다른 숙제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50+인생학교'를 다녀간 학생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50년의 무뎌진 칼날을 다시 세우는 시간' '꼰대를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던 수업시간' '거북이 등껍데기처럼 딱딱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졸업생들이 남긴 수료 소감이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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