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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리뷰] 영화 `토니 에드만`…아버지와 딸, 가면을 벗겨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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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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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면 아버지가 부끄럽게 여겨지는 때가 찾아온다. 어린 시절 신처럼 전지전능할 것만 같던 아버지가, 어떠한 일도 척척 해낼 것만 같던 당신이 작아 보이고, 피하고 싶고, 괜스레 창피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의 일. 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어느 순간 정반대의 길에 접어든다. 작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이 발견되고, 그런 당신이 자꾸만 커져 보이고 이따금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당신을 부끄러워한 지난 날들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 진정한 친구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16일 개봉)은 그런 아버지와 자식(딸)의 관계와 소통 문제를 다룬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유력 후보였지만 아쉽게도 수상이 불발됐던 영화로, 매 작품마다 깊은 성찰과 유머를 보여준 마렌 아데의 7년만의 신작이다. 영화는 언뜻 평범해보이는 부녀의 이야기를 일종의 가면놀이처럼 기상천외하게, 희극적으로 전개하면서 예측불허의 지점에서 여러 번 심금을 울린다.

루마니아의 기업 컨설턴트로서 오로지 일만 생각하며 인생의 행복을 잃어가고 있는 이네스(산드라 휠러). 독일에 살던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그런 딸의 일상에 틈입해 시도때도 없이 장난을 건다. 회사 로비에서 이네스를 기다리다 그녀가 등장하면 틀니를 끼고 다가가는가 하면, 난데 없이 딸의 회사에 출몰해 방귀 쿠션을 깔고 앉아 주변을 당황케 한다. 그녀는 어느 순간 자포자기의 상태가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던 제 삶의 그늘을 드러내 보인다.

덥수룩한 가발을 쓰고 괴상한 뻐드렁니 모양의 틀니를 끼고서는 자신을 독일 대사 '토니 에드만'이라 주장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저곳으로 딸을 데리고 다닌다. 그러면서 일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가던 딸의 마음에 활력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부활절에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을 불쑥 찾아가 노래 선물을 하겠다며 피아노 앞에 앉더니 난데없이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을 연주한다. 딸은 거의 반 강제로,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어 열창한 다음 뛰쳐나간다.

이 신에 이은 마지막 30여 분은 이네스의 내면이, 부녀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이 영화의 절정이다. 즉흥적으로 나체 생일 파티를 연 이네스의 집에 거대한 털북숭이 하나가 출몰한다. 불가리아의 전통 탈 쿠케리를 뒤집어 쓴 이 거대한 털북숭이의 정체는 아버지 빈프리트. 그런 아버지와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한 나체의 이네스가 마주선다. 그리고 이 발가벗겨짐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네스는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과 소통하려 했는지를 깨닫는다. 이네스는 그런 아버지의 가슴팍에 아이처럼 폭 안긴다.

영화가 끝나고도 쉬이 여운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유머 뒤에 감춰졌던 빈프리트의 어떤 절박함 같은 게 몹시 애틋하게 다가와서 인 것 같다. 시시때때로 배를 잡고 웃다가도 자주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다. 162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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