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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남정욱의 영화 & 역사]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에 뿌린 비극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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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눈물'과 '블러드 다이아몬드']

끝없는 내전과 부족 간 학살로 '신이 버렸다'는 아프리카

실은 제멋대로 국경선 긋고 땅 나눈 유럽 열강들 때문

80만 인종 청소 비극 딛고 선 르완다처럼 새 희망 찾기를

조선일보

남정욱 작가


영화 '태양의 눈물'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아프리카를 버렸어." 그의 뒤로는 배가 열린 임신부가 허옇게 눈을 치뜬 채 죽어 있다. 나이지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둔감해질 정도로 이어지는 학살 장면이다. 얼마나 둔해지는지 나중에는 저렇게 죽여서 어느 세월에 몇만명을 채우나 답답해진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콩고 전쟁이다. 1998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된 이 전쟁에는 8개국 25개 무장 세력이 참가(!)했고 500만명 이상 사망자를 냈다.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3등이다.

아프리카는 까만 대륙이다. 사는 사람들이 까매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 땅에 대해 까맣게 몰라서 그렇다. 월드컵 때 말고는 우리가 그 나라 이름을 들을 일이 별로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축구를 잘할까. 축구 말고는 이들이 입신양명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또 다른 유력 종목은 쿠데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죽어라 맨땅에서 맨발로 공(비슷한 것)을 찬다. 아프리카는 반듯한 대륙이다. 자로 잰 듯 나라별로 구획된 것이 마치 신도시 조감도 같다. 이유는 유럽인들이 진짜로 지도에 자를 대고 국경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1884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주도했던 베를린 콘퍼런스는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나눠 먹기 매뉴얼이었다. 말은 좋았다. 미개한 아프리카를 문명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백인들의 사명감 끝에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는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1을 먹어치웠다. 그렇게 유럽인들은 제멋대로 선을 그어놓고 떠났고 그 그어진 선마다 고랑이 되어 피가 흘렀다. 아프리카는 기본 생활 단위가 부족이다.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제각각인 사람들을 국가라는 틀에 강제로 묶어 버렸으니 분쟁이 안 나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다. 가령 우간다의 경우 한때 라디오방송이 24개 언어로 흘러나왔다. 아프리카 56개국은 대부분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반에 독립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패턴은 독립운동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고 이들이 독재를 하다가 쿠데타 세력(대부분 군부)에 뒤집히고 더 끔찍한 독재가 이어지는 식이다. 고문이 취미였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독재자 보카사나 냉장고에 인육을 재어두고 먹었던 우간다의 이디 아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일보

/이철원 기자


재미있는 나라가 두 개 있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다. 시에라리온은 영국에서 돌아온 노예들이, 라이베리아는 미국 출신 노예들이 건설했다. 노예제도 폐지 후 존재가 귀찮아지자 잡아왔던 곳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더 악독한 시어머니가 된다. 이들이 그랬다. 저도 노예였던 주제에 그래도 문명의 맛을 봤다고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심지어 자기들은 피부가 덜 까맣다는 이유로 못살게 굴었다.

풍부한 자원은 이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후추였고 고무나 금이나 석유였다가 지금은 다이아몬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다이아몬드 사냥꾼으로 나오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이 무대다(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분쟁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시에라리온은 '손 절단 부대'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로 반군(叛軍)들은 투표를 못 하고 다이아몬드를 캐지 못하게 민간인의 손을 자른다. 전체 시장에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유통량은 15% 정도다. 그러나 액수로 치면 수억달러로 어마어마한데 대부분 반군들의 군자금으로 흘러든다. 2003년,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막는 킴벌리 프로세스가 통과되었지만 선진국에 다이아몬드를 팔아넘긴 수익으로 다시 선진국들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프로세스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정의는 생각보다 자주 인간의 탐욕에 자리를 양보한다. 반군 하면 떠오르는 게 소년병이다. 못된 어른들은 아이들의 죄의식을 흩어놓고 마약을 먹여 손에 총을 쥐여준다. 이들은 친척을 쏘고 친구를 쏘고 또래 여자아이들을 강간한다. 아프리카에는 지금도 20만명의 소년병이 있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결국 까만 걸까.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도 신은 아프리카를 버렸다는 대사가 나온다. 모쪼록 이 대사들, 백인들의 편견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사실이라면 아프리카 너무 불쌍하잖아. 르완다 대사를 지낸 외교부 박용민 국장은 희망을 보고 온 모양이다. "(르완다는) 석 달 동안 80만명을 죽인 역사를 경험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결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인간은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느냐에 따라 다른 존재가 된다." 르완다라는 국명도 점점 더 커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남정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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