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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노후 불안한데 청년 걱정하는 노인들…복지를 권리로 여기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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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민정책 오디션 관전기



한겨레

최현숙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포와 불안은 이 시대 노인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의 감각이다. 자신들이 세운 나라가 전쟁으로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경험은 ‘태극기 집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공포와 불안은 정치적 영역을 넘어 그들의 삶 곳곳에 스며든다. 지난 16일 ‘시민정책오디션’에서 ‘노후의 삶’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거듭 ‘불안’을 이야기했다. 두 다리가 차례차례 장애가 된 남편을 돌보며 사는 75살 여성 노인은 겨우 부부합산 32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으면서도 “복지 타령에 나라 곳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내가 만나본 어르신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기초연금 20만원을 준다고 했다가 안 준다 했을 때 대다수 노인의 반응은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청년들도 일자리 없다는데, 어떻게 우리만 달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지표가 말해주듯이 이 땅의 노인세대야말로 복지와 돌봄이 가장 절실한데 막상 국가가 자신에게 주는 복지 혜택에 대해 ‘송구’스러워하고, 불안해한다. 40대 이하 젊은 세대들이 복지를 국민의 정당한 권리로 인식하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과 대비된다.

좌담회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이 먹고살 만한 측에 속했다. 몇몇은 국민연금을 받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윤택하게 사는 듯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를 줍거나 공공근로를 하는 노인들, 복지가 가장 절실한 가난한 노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가난한 노인들은 평생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무시당했고 외면당해온 게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자신의 탓이라고 체념하며 국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불경’이라며 복종과 불안을 내면화하는 데 익숙해 있다. 기초노령연금 20만원도 감지덕지할 뿐이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연금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지체험이 늘어날수록 노인들도 복지를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자신들의 당당한 권리로 받아들이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만 60살의 독거여성인 나는 지난 10년을 노인복지 현장에서 일했다. 요 며칠은 농촌 할매들의 구술 생애사 작업을 위해 대구 우록리 산골에 와 있다. 우록리 산골 할매들은 죽기 전까지는 밭을 갈아야겠다며 닳아빠진 무릎과 허리를 꿈지럭거린다. 자식들은, 할매만 죽고 나면 이 땅을 다 돈으로 바꿀 작정이다. 죽어가는 농촌은 곧 꼴깍 숨을 거둘 거다.

태극기 집회에서 표출되는 혐오의 뒷면은 두려움이다. 자기 노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노인들의 박탈감을 어떻게 응답하고 치유할 것인가. 2017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최현숙/구술 생애사 르포문학 작가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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