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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디즈니랜드 경영방법 배우자' 사찰 수입감소에 '주지학원'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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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인구감소와 농촌인구 과소화에 따른 시주감소로 일본 사찰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신자들의 시주 외에 절의 중요한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례나 조상제사도 갈수록 간소화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찰(名刹)이나 고찰(古刹), 카리스마적 매력이 있는 일부 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찰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찰 주지들을 대상으로 마케팅과 재테크, 재무회계 등 절 경영전반에 대해 해당분야 전문가가 강의하는 일종의 사설학원인 주쿠(塾)가 생겨난 배경이다.

작년 11월 도쿄(東京)타워가 보이는 도심의 한 사찰에 승려 15명 정도가 모여 들었다. 일반 사단법인 '사찰의 미래'가 개설한 '미래의 주지지쿠'(住職塾) 수강생들이다. 스님들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강의에 열중했다.

연합뉴스

일본 교토의 사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날의 강의주제는 '재무'.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다 '사찰의 미래' 대표이사가 된 이데 에쓰로(37)가 강사다. 가상의 특정 사찰 재무제표를 놓고 자기자본비율과 손익분기점을 구하는 방법, 자금계획을 세우는 방법 등을 배운다. 이 학원은 승려들에게 경영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학원장(塾長)인 정토종 본원사(本願寺)파 승려인 마쓰모토 쇼케이(37)와 강사인 이데가 편찬한 '주지교과서'에 나오는 사찰 경영전략을 짜기 위한 마케팅과 경영분석방법, 재무 등을 1년 과정으로 배운다. 졸업할 때는 사찰을 "이런 절로 만들고 싶다"고 바라는 미래의 모습과 현실에 필요한 구체적 대책을 정리한 '사업(寺業) 계획서'가 과제로 부과된다.

수강료는 약 15만엔(약 150만원). 2012년 봄 1기때부터 지금까지 도쿄,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교토(京都) 등을 순회하며 개최해 왔다. 30개 가까운 종파의 주지와 주지가족 등 약 42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의 연령도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시주 감소와 장례 및 제사 간소화 외에 종교법인에 대한 세금우대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도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마쓰모토 학원장은 "사업계획서는 절의 나침반"이라고 강조했다.

강의 내용은 실천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재무' 강의에서 이데 강사는 디즈니랜드를 예로 들었다. 사찰은 가람(건축물)과 묘지 등의 고정자산(하드)과 종교적인 공양이나 의례(소프트)를 융합해 인간의 생사(生死)의 '이야기'에 대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디즈니랜드는 화려한 어트랙션(하드)과 쇼나 고객서비스(소프트)를 균형있게 융합해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으니 사찰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찰도 시주에만 의존할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자금계획을 세우는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수강생이 사업(寺業)계획을 발표한다. 수강생들이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마쓰모토 학원장 등의 강평을 받으면서 계획을 마무리한다. 도쿄 클래스의 발표회는 1월11일에 열렸다.

나가노(長野)현에서온 조동종 석수사(碩水寺)의 다케라라 아키오(45)는 인터넷에 가상사원 '간타무사'(願陀無寺)를 설립해 3~5년후에 '성지'(聖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고령화율이 40%가 넘는 과소지역 절의 주지로 일하는 다케하라는 시주할 신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하다가 취미인 게임의 건담 플라스틱 모델 제작을 활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건담 플라스틱 모델이 인연이 돼 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마을도 활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요 없어진 플라스틱 모델을 공양하는 기분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호의적인 느낌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있는 한편 "시주하는 신도가 떠날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원장인 마쓰모토는 명찰이나 고찰 등이 지탱해온 불교계가 이제부터는 "보통 절"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제 부터는 사찰끼리 지혜와 정보를 교환하면서 경영기술을 높임으로써 업계의 수준을 높이는 발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쿠'졸업생들은 종파와 지역을 초월해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2일 전했다. 4월에는 제6기생 120명 이상의 주지들이 수강할 예정이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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