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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소리 내어 읽으면 말 그대로 ‘팔랑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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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안의 동시 사용설명서



한겨레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나비
김철순

봄볕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비 날아간다
나비 겨드랑이에 들어갔던
봄볕이
납작 접혀서 나온다
나비는 재미있어서 자꾸만
봄볕 접기 놀이를 한다
나비가 접었던 봄볕이
팔랑팔랑
땅에 떨어진다

〈사과의 길〉(문학동네 2014)



이것은 무엇의 이름일까. 아이랑 소리 내어 읽으며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거꾸로여덟팔, 긴꼬리제비, 유리창떠들썩팔랑, 지리산팔랑, 흰뱀눈, 눈많은그늘, 번개오색, 파리팔랑, 흰줄표범, 구름표범, 제주꼬마팔랑, 뱀눈그늘, 무늬박이제비, 큰흰줄표범, 꽃팔랑, 외눈이지옥사촌.

‘유리창+떠들썩+팔랑’, ‘구름+표범’, ‘눈+많은+그늘’ 같은 결합이 매우 독특한 이미지와 시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비 이름이다. 끝에 ‘나비’만 붙이면 된다. 얼마나 떠들썩하게 팔랑거리고 날면 이름에 ‘떠들썩’, ‘팔랑’이 다 붙었을까. 생김새가 어떻기에 ‘뱀눈그늘’, ‘갈구리신선’, ‘외눈이지옥사촌’ 같은 말이 붙었을까. 아이랑 같이 이름의 주인공을 검색해 보자. 나비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 이름을 적어주거나, 나비 이름을 지은 다음 이름에 맞는 그림을 그려보아도 좋다.

나비는 한자로 ‘접(蝶)’이다. 물론 이 짧은 작품에 “접었다 폈다” “납작 접혀서” “접기 놀이” “접었던 봄볕” 등 “접”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오는 것이 이와 관계된 때문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나비가 ‘접(蝶)’임을 떠올리고 다시 읽어보면 시를 감상하는 가외의 재미 하나가 보태지는 느낌이다. 나비만큼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흔치 않다. 나비를 노래하는 방식도 시인마다 조금씩 다르다. 김철순 시인은 “접었다 폈다” 하는 나비의 날갯짓을 “봄볕 접기 놀이”로 명명함으로써 자기만의 감각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마당 가득 환하고 따뜻하게 떨어진 봄볕이 나비의 소행임을 알겠다. 시인이 독자에게 일으킨 나비효과다.

나비 날아가는 모양을 말로 나타내보자. 나풀나풀은 재밌다. ‘나는 풀이 좋아, 나는 풀꽃이 좋아’ 하며 날아가는 나비 마음을 담은 말 같다. 팔랑팔랑은 좀 더 기운차고 활기차다. 탄력이 있다. 때로는 비틀비틀 힘겨워 보이는 것도 같고 삐뚤빼뚤 제 맘대로인 것도 같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어지러운 모양이기도 하니 어질어질 난다고 해도 그럼직하다. 투덜투덜, 폴폴폴폴, 팔락팔락, 알록달록, 촐랑촐랑, 훨훨훨훨, 들썩들썩,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른 말이 떠오를 거다. 함민복 시인은 “삐뚤삐뚤”이라고 받아썼다.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다음 주 목요일(30일)이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다. 남쪽으로 날아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때다. 들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로 돋은 풀을 밟아 ‘답청절’이라고도 한다.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는 것도 이날이다. 어렸을 적엔 첫 나비 보는 마음이 두려웠다. 첫 나비로 흰나비를 보면 그해에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소릴 어른들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눈에 띄는 나비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재수가 좋다는 노랑나비를 얼른 볼 수 있기만 바랄 수밖에.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강원도 영월 석회암 지대의 나비 개체 수가 15년 동안 평균 34%나 감소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나비 종류 역시 82종(1999년)에서 71종(2014~2015년)으로 줄었다고 하니,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강수량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겠다. 나비 감소가 생태계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쩌다 팔랑, 마주치는 나비가 더 반갑고 귀하게 다가온다.

김철순 시인은 동시를 감각적으로 쓰는 시인이다. 〈사과의 길〉은 감각적 표현을 익히거나 즐기기에 맞춤한 동시집이다. 초등 3학년부터 읽기에 알맞다. 한 편 더 소개한다.



귀뚜라미
김철순

귀뚜라미가
확 펼쳐졌던 여름을
반으로 접어서
박고 있습니다

뚜르르르르르르르르

밤이 깊도록
재봉틀 소리가 납니다

여름의 길이가
꽤 길었나 봅니다

이제 곧
귀뚜라미의 바느질이 끝나면
여름이 접히고
가을이 오겠지요.

〈사과의 길〉(문학동네 2014)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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