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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몸사린 朴 ‘저자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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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서 입장 표명 29자

한국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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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1일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서 단 29자만 남겼다. 검찰과 특별검사팀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불만을 표시해온 박 전 대통령이 이날 취재진 앞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전날 변호인인 손범규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이) 준비한 메시지가 있다”고 밝혀 결백 주장 또는 사과와 반성 등 여러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없었다.

원론 수준의 짧은 입장만 내놓은 것에 대해 검찰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저자세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불소추특권이 사라진 지금으로선 구속 등 강제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관련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배제하고 변호인단이 고심해서 정해준 ‘포토라인 코멘트’를 그대로 읽고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장외 여론전’을 펼친 그간의 전략은 수사를 앞둔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정규재 TV인터뷰 등에서 의혹에 대한 소명 없이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이 때문에 직무 정지된 대통령이 여론전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실 파면 후 검찰 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길게 말을 이어갈 심리상태가 아닌 점도 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이 검찰 출석 시 짧은 입장만 밝힌 관례를 택한 것으로도 보인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며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1995년 11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도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는 짤막한 말만 남겼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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