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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한겨레 프리즘] 참 알뜰한 당신들 / 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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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황상철
국제뉴스팀장


프랑스 총리를 지낸 프랑수아 피용(63)이 지난해 11월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됐을 때, 차기 대통령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오는 5월 결선투표에서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결선투표에 오를 가능성도 가물가물해졌다. 지난 1월 한 주간지가 피용이 하원의원이었을 때 부인 페넬로프를 보좌관으로 위장취업시켰다고 폭로하면서부터 그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페넬로프는 세 차례의 보좌관 기간 동안(12년) 일은 하지 않고 83만1440유로(10억여원)를 받아 챙겼다. 피용은 또 상원의원일 때는 그의 자녀 두 명한테 8만3735유로(1억여원)를 지급했다. 피용은 “변호사로 임시 고용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자녀들은 변호사가 아닌 법대생이었다. 가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챙기면 공금 횡령이다.

피용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걸 보면, 프랑스인들도 가족을 위장취업시켜 공금을 빼돌리는 짓은 참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큰돈이 오가는 뇌물 범죄보다 이런 약아빠진 불법행위에 더 분노한다. 사람의 됨됨이와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터다. 프랑스인들은 현명해야 한다. 그냥 넘어갔다간 나중에 큰코다칠 수 있다. 우린 그럴 뻔했다.

자기 돈 안 쓰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됐을 때, 자기 소유의 서초동 영포빌딩을 관리하는 회사에 아들과 딸을 위장취업시켜 꼬박꼬박 월급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비비케이(BBK) 사건이나 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보다 더 국민들의 분노를 사자, 이 후보는 뒤늦게 사과하고 세금도 냈다. 그는 대통령이 됐다. 아무 탈 없이 넘어가서 그랬는지, 임기 말에 나랏돈을 대놓고 삥땅하려다가 들통났다. 퇴임 뒤 머물 땅을 청와대 경호처와 함께, 그것도 아들 이시형의 이름으로 사면서, 경호 부지를 자택 부지보다 비싼 값으로 사들여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낮추고 국가가 더 많은 돈을 내게 했다. 대법원은 이시형이 얻은 이익을 9억7천만원으로 봤다. 당시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지만 특별검사가 전 경호처장 등을 기소해 유죄가 확정됐다.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 등으로 이명박 일가의 연루 의혹은 규명되지 않았다. 자녀 위장취업 사건으로 싹수가 노랗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방심하고 있다가 당할 뻔한 것이다.

개인 돈과 공금이 구별 안 되기로는 ‘흡사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터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박근혜를 대리했던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2013년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에 넣고 사적 용도로 썼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퇴했다. 후보자로 지명된 뒤 언론사에는 공금을 소소하게 ‘흡입’한 그의 행태에 대한 온갖 제보가 쏟아졌다. 인심을 잃은 듯했다.

이런 의문이 든다. 왜 돈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한테는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 위험한 금품을 챙길까? 전·현 특수부 검사들은 여러 설명을 내놨다. 금품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확인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금품은 지위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여긴다, 습관이 돼 죄의식이 없다, 몇천만원은 큰돈으로 보이지 않아 경계심이 없다…. 공통된 의견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서 가진 돈이 많건 적건 간에 챙긴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 말했다. 한번 공짜 돈맛을 보면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인생 망친다. 최순실박근혜도 그렇다.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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