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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춘추] 족쇄를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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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변호사님은 전문이 뭐예요?"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사실 돈만 제대로 주면 어지간한 사건은 다 처리해 줄 수 있다. 그래도 체면상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지라 상황에 맞춰 전문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던 중 깨달은 바가 있어 냉면집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니 쉽게 이해를 한다.

서울에서는 냉면 하나만 잘 만들어도 1년 내내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아주 유명한 집이 아니라면 냉면만 팔아서는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국밥도 팔고, 만둣국도 팔아야 한다. 미국 법률시장은 서울 냉면집에 비교할 수 있다. 하나의 전문 분야만 있어도 변호사로서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법률시장은 아직까지는 시골 냉면집 수준인지라 주어지는 대로 다양한 사건을 처리해야 사무실 유지가 가능하다.

지난 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국내 법률시장이 미국에 3단계 개방됐다. 서울 냉면집처럼 축적된 노하우와 조직,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법무법인을 설립해 한국 변호사를 고용하고 국내 법률업무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국내 법률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법률시장이 개방된다는 것은 반대로 미국 법률시장도 개방된다는 것이다. 공격은 최상의 수비라는 말이 있다. 법률시장 개방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미국 법률시장의 장벽을 넘어 들어간다면 오히려 국내 변호사들의 활동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이 우수한 인재들이 풍부하다는 것 아닌가. 분명 한국 변호사들은 우수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

대형로펌을 비롯한 국내 변호사들의 해외 법률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재 변호사들에 대한 불합리한 조세제도와 각종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여야 한다. 골리앗과 싸우려는 다윗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놓고 이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법률서비스 산업만큼 부가가치가 큰 산업도 없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조금만 변경해도 더 넓은 시장이 우리를 기다린다. 길을 열어 주었으니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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