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무장해제당하고, 욕망은 춤을 춘다.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그저 기대고 싶은 마음뿐이다. 숙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술독'에 빠져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숙취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기분 좋다고 술 한 잔, 기분 나쁘다고 또 한 잔,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한 잔. "팀장님, 부장님 다 함께 '쨍'해요." 신나게 돌려서 회오리주를 만들고, 쨍쨍쨍 경쾌한 효과음까지 곁들이면 해롱해롱 정신은 '혼돈', 싱글벙글 표정은 '방긋'이다.
"그래 달려!" 허세의 소용돌이가 뒤덮은 공간, 그 끝은 언제나 그렇듯 후회막심이다. 다음 날 오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숙취의 고통이 뒤따른다. 속은 메스껍고, 정신은 어질어질, 머리는 지끈지끈…. 물을 벌컥벌컥 마셔 보고, 찬바람을 쐬겠다며 들락날락 해보지만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음주인의 비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효과 빠른 숙취해소제를 찾기 위한 나만의 노력을 이어가기도 했다.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율무차에 의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동전 한 닢으로 해결하는 값싼 처방이었다. 따뜻한 율무차를 한 잔 마시면 왠지 요동치는 속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라는 드링크도 내게는 유용한 숙취해소제로 인식됐다. 그것을 마시면 왠지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끈거리는 두통의 고통을 말끔히 해소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지금도 율무차나 ○○○드링크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변하기 어렵다.
사실 당시에도 숙취해소 효과가 정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의학 성분이 전혀 없는 약이라도 환자의 심리적인 믿음을 통해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플라세보 효과'였는지도 모른다. 숙취해소에 효과가 좋다는 다양한 상품을 경험해봤지만, 실제로 효과를 본 제품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도 과음으로 숙취를 경험할 때마다 효과 빠른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욕망은 요즘도 변함이 없다. "그렇게 당하고 또 속느냐." 누군가 혀를 끌끌 차며 딱하다는 표정을 짓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실오라기 같은 '믿음의 끈'을 놓아 버리면 나를 보호해줄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쩌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숙취해소제는 믿음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믿고 의지했던 그 존재를 어느 한순간 부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람 심리를 파고드는 상술의 유혹, 어디 숙취해소제 시장뿐일까.
만약 정치 영역에서 그 상술이 이용된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이성적인 검증장치가 결여된 믿음은 결국 '종교적인 맹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전직 대통령 자택 앞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장면은 그 위험성을 현실로 드러내는 사례 아닐까.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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