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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나는 새로운 미학···송번수의 타피스트리, 안상수의 타이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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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각각 기획전

성격이 전혀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뚜렷한 두 전시가 열리고 있다. 회화나 조각처럼 미술관에서 늘 접하는 게 아닌 분야를, 이를 파고든 한 작가의 세계를 각각 펼쳐보인다는 공통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송번수_50년의 무언극'는 송번수 작가의 타피스트리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의 '날개, 파티'는 안상수 작가의 한글 조형물과 학교 디자인이 바로 그 분야다.

씨실과 날실에 응축한 내적 성찰과 사회 비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송번수_50년의 무언극'

타피스트리, 판화 등 100여점 전시

"아티스트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기법, 한 테마를 갖고 평생 이끌어 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많은 테크닉과 시대성에 따라 달라지는 어떤 테마를 갖고 평생을 변화 속에서 진행하는 작가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판화가이자 섬유예술가인 송번수(74)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00여점의 작품은 기법과 변화의 궤적이 퍽 풍부하다.

그 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큼직한 타피스트리 작품들이다. 멀리서 보면, 작품 사진으로만 보면 회화와 구분이 쉽지 않다. 씨실과 날실의 가닥마다 섬세하게 색을 입혀 형태와 음영을 표현한 기법이 그만큼 정교해서다. 전시장 조명을 흡수하는 섬유의 특성에서 나오는 미묘한 분위기도 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는 만끽하기 힘들다.

그가 회화적 타피스트리의 매력에 빠진 것은 70년대 말, 홍익대 공예학과를 나와 이미 판화가로 명성을 얻은 즈음에 떠난 프랑스 유학에서다. 현지 미술관의 타피스트리 전시를 보고 "이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탐구하고 시도하며 기법을 발전시켰다. 면과 색의 구성이 중심이던 초기작 대신 점차 '가시' 연작 같은 섬세한 묘사의 작품들이 나왔다. 나뭇가지에 촘촘히 돋은 가시는 그가 판화나 종이부조에서도 곧잘 다룬 것이다. 때로는 내적 성찰을, 때로는 사회적 비판을 상징하는 듯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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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 작품 '미완의 면류관' 앞에 선 송번수 작가. 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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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연작 중에도 특히 '미완의 면류관'은 기법과 주제 모두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가시'의 의미를 종교적 사유로 확장한 동시에 가시 면류관 일부를 미완으로 남겨 새로운 시선을 더했다. 이 작품은 본래 흑백에 가로세로 각 4m의 초대형으로 제작됐다. 경기도 광주시 능평성당 제단에 십자가 대신 걸려 있는 타피스트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것은 이를 푸른 색으로 바꿔 작게 만든 작품이다. 이후 작가는 가시를 불태우는 '네 자신을 알라'(2007)를 통해 '가시' 연작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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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 작가의 타피스트리 작품 '미완의 면류관'. 2002~2003 모사,평직 302X289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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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 작가의 타피스트리 작품 '이라크에서 온 편지' 2006 모사, 평직 205X202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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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 작가의 타피스트리 작품 '2011.3.11'이 전시장에 걸려 있는 모습 2011 아크릴사, 평직 195X274cm 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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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 작품 '네 자신을 알라' 앞에 선 송번수 작가. 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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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총탄의 흔적을 생생히 담은 '이라크에서 온 편지'나 동일본대지진의 충격을 묘사한 '2011.3.11'처럼 동시대 사건을 다룬 타피스트리도 눈에 띈다.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 감시자, 비판자여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는 판화 '공습경보' 등에서는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아냈다. 이를 비롯한 여러 판화 작품 역시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의 면면, 판화라는 매체의 흥미로운 면면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타피스트리는 한 작품 제작에 1년 정도가 걸리는데다, 작품 크기가 커서 이번 같은 대규모 전시는 이전에 거의 없었다는 게 미술관 측 설명이다. 6월 18일까지.

글꼴·타이포그라피 등 시각디자인에서 '학교 디자인'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날개, 파티'

디자이너 안상수의 한글 조형물과 교육 실험 선보여

"스무살까지의 성장기 이후 20년은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활동했고, 이후 20년은 모교에서 교육자로 지냈습니다. 제 역할의 하나는 디자이너, 또 하나는 교육자인 그런 삶을 살아왔죠."

시각디자이너 안상수(65) 작가는 5년 전, 정년에 5년 앞서 홍익대 교수를 그만두고 새로운 디자인 학교를 세웠다. '파티(PaTI)'라고 불리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다. 파주출판도시의 여러 곳을 강의실 삼아 출범, 올해 처음 1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날개, 파티' 가운데 '파티'가 바로 이 학교다. '날개'는 안상수 작가의 호이자 이 학교에서 교장 대신 그를 부르는 직함이다. 이번 전시는 시립미술관이 꾸준히 이어온 원로작가 기획전의 일환이면서도 이처럼 그 초점이 양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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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날개, 파티' 전시장을 둘러보는 안상수 작가. 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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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에 초점 맞춘 전시 부분도 통상적 회고전과는 다르다. 한글을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게 한 '안상수체'를 비롯, 그의 활동이력은 전시장 한켠의 연표 설치물 등으로 축약하는 대신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활용, 이전이나 이번에 새로 만든 다양한 시각 작품을 선보인다. 한글 자모 중에 그가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 'ㅎ'을 중심으로 문자탑을 그린 작품이나 인물을 겹쳐 놓은 실크스크린 작품, 문자도를 영상으로 구성한 작품, 도자기 타일로 옮긴 작품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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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작가 기획전 '날개, 파티'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전시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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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파티'에 선보인 문자도 영상. 원화 안상수 재제작 스튜디오 호호호 사운드 디자인 지미세르 2017사진=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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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홀려라'는 그 제목부터 곱씹을 필요가 있다. "창작은 몰입과 감정이입, 즉 대상과 나의 일치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나오는 겁니다. 그 상태가, 홀려서 하는 것이 창작자가 가져야할 기본 태도입니다." '몰입'을 우리말로 풀어낸 것이 '홀리다'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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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작가의 '홀려라'. 캔버스에 아크릴, 194X259cm, 2017 사진=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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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또다른 축인 '파티'의 요모조모를 선보이는 설치물은 곱씹을 여지가 더욱 많다. 교육과정, 학생 활동, 학교의 지향 등을 인쇄물과 시각자료로 다양하게 펼쳐보인다. 학교를 '배곳'이라 부른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따라 학부는 '한배곳', 연구과정은 '더배곳'으로 부르는 등 색다른 용어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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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요모조모를 보여주는 거대한 설치작품. 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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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이너 안상수'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했다면 좀 뜻밖일 전시다. 그는 학교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학교 디자인"이라 불렀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자기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겁니다." '삶의 디자인'은 이 학교의 과목 중 하나다. 그는 독일 바우하우스를 빌어 '학교'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내후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독일 바우하우스 관련 전시는 지금도 전세계를 순회중입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바우하우스를 '이념'이라고 합니다. '건물'이 아니라." 5월 14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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