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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서지문의 뉴스로책읽기] 구관이 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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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류성룡 '징비록'

조선일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 의식 속의 미국은 어느 날 갑자기 100% 변모했다. 미국은 6·25 동란 때 피 흘려 싸워서 한국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해주고 막대한 원조로 붙들어 세워준 나라, 국산 새 제품보다 훨씬 예쁘고 따듯한 옷을 구호품으로 보내주는 나라였다. 그러다가 창졸간에 음흉한 제국주의자, 우리나라를 악랄하게 종속화해 산송장을 만들고 말 나라로 바뀌었다.

그 후 미국은 한국에 한없이 얻어맞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국은 맞기만 했다. 학생들이 자기네 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비록 불행한 사고이지만 본질은 과실치사인 효순·미선이 사건을 두고 마치 모든 한국인에게 확대될 기획 살인이기라도 한 듯 저주를 퍼부어도, 미국이 광우병 소고기를 팔아 우리 국민을 다 죽이려 한다며 몇 달이나 증오의 굿판을 벌여도, 길가는 미국인에게 침을 뱉고 성조기를 짓밟고 태워도 맞기만 했다. 미 정부 차원의 항의도, 시위 주동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도 없었다. 우리 역시 미국은 대국이니 때리면 당연히 맞아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조선일보

국보 제132호 서애의 친필로 쓴 징비록.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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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반미주의자들은 이런 미국의 행동을 요즘 한국의 '사드' 도입을 저지하려고 중국이 벌이는 조폭적인 행패와 비교해 보았을까?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화 저지가 1차적 목표였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를 보전해 주고 막대한 원조를 주면서도 '동맹국'으로 대등하게 대우했다. 반면 중국은 6·25 때 백만 대군을 보내 한국을 쓸어 없애려 했던 나라다. 그런데도 한국은 1992년 수교 후 이웃으로 중국의 경제 개발을 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칭 신형 대국이니 G2니 하며 우리를 짓밟고 능멸하려 든다.

임진왜란 당시 체찰사 류성룡은 명나라 지원군의 식량을 조달하느라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의 노심초사를 명나라 장수들도 알고 측은히 여겼다. 그러나 명의 이여송 제독은 군량미 문제로 그를 꿇어 앉히고 문초했고, 임진강을 두고 대치한 명군과 왜군의 강화를 막기 위해 류성룡이 임진강 배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거짓 정보에 속아 그를 명 진영에 불러들여 곤장 40대를 치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하고만 있지 않는 미국'은 우리의 반미에 어떻게 대응할까? 어떤 경우라도 중국처럼 야만적이진 않을 테니 그로써 위로를 삼을 수 있을까?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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